문재인 대통령은 16일 국회에 문형배,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18일까지 송부해 달라고 재요청했다. 그때까지도 국회가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으면 두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청와대가 국회 위에 군림하겠다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靑 “결격 사유 없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서면 브리핑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업무 공백을 없애기 위해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 임기가 만료되는 18일을 (인사청문 보고서 재송부) 기한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18일까지 보고서가 송부되지 않으면 문 대통령은 19일 인사안을 재가할 수 있고, 새 헌법재판관 임기는 그날부터 바로 시작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두 후보자의 인사청문 요청서를 국회에 보냈다. 하지만 이 후보자가 남편과 함께 소유한 35억원대 주식 관련 의혹이 불거지면서 야당은 지명 철회를 요구했고,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시한은 지난 15일로 종료됐다. 그러자 문 대통령이 이날 다시 보고서 송부를 요청한 것이다. 18일 이후에는 야당 반대에도 문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할 수 있지만 정치적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현 정부 들어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급 인사는 모두 14명이 된다.

청와대는 줄곧 이 후보자에 대해 “결격 사유가 없다”는 의견을 유지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도 “이 후보자의 주식 보유 관련 의혹은 대부분 해명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부터 오는 23일까지 중앙아시아 3개국을 국빈 방문하는 만큼 19일 임명안 재가는 전자결재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파행 위기 놓인 4월 임시국회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문 대통령의 인사청문 보고서 송부 요청은) 국회에 대한 청와대발(發) ‘항복 요구서’”라며 “지금이라도 이 후보자 지명을 거둬들일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헌법재판관은 대통령도 탄핵시킬 수 있는 자리”라며 “(한국당의 고발로) 언제든지 피의자 신분이 될 수 있는 이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모셔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전날 이 후보자 부부를 부패방지법·자본시장법 위반, 공무상비밀누설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 응답이 과반이었다는 점을 들어 “청와대가 국민 여론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게 아니라면 임명을 강행해선 안 된다”며 “인사 검증 책임자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문 대통령이 이 후보자 임명을 관철시키려는 데는 ‘고위 공직자 인사 실패’로 더 이상 야당에 밀릴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야권 관계자는 “2기 개각 장관 후보자 두 명이 낙마한 상황에서 이 후보자마저 임명이 철회되면 국정 동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란 위기감을 느낀 것 같다”고 했다. 청와대가 이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면 여야 간 대치 정국은 한층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4월 임시국회에서 논의하기로 한 추가경정예산 편성 및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안 처리 문제 등을 놓고 진통이 예상된다.

문 대통령, 순방 후 여·야·정 협의체 가동

문 대통령은 이날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친 후 여·야·정 국정 협의체를 가동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순방 출국길에 환송 나온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를 만나 이같이 당부했다고 윤 수석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에서 최저임금 결정 구조 개편과 탄력근로제 개선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야 합의가 어려우면 중앙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서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 쟁점 사안들을 해결하는 게 좋겠다”고 당부했다. 야당과의 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쟁점 법안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직접 담판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조사위원회’ 구성을 마무리지어 달라고 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한국당이 추천한 조사위원회 위원 3명 가운데 2명의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하헌형/박재원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