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라운드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올해부터 새 골프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그린에서 깃대를 꽂은 채 퍼팅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압축된다. 프로와 아마추어 골퍼의 선택이 명확하게 갈린다는 게 흥미롭다.

올 들어 마이골프스파이 등 여러 골프 관련 단체는 깃대를 꽂았을 때와 뺐을 때의 퍼팅을 비교 실험했다. 그 결과 꽂는 게 대체적으로(빠른 퍼팅에선 특히 더) 유리한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프로들은 예전 그대로인 ‘빼기파’가 대다수다. 티마커 같은 사소한 것조차 바꾸기를 꺼리는 안정 성향과 효과가 검증될 때까지 기다리는 관망 심리가 깔려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남자프로 중 완전한 깃대퍼팅을 하는 선수는 애덤 스콧(호주),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정도다. 두 선수는 대부분 거리 및 경사 유무와 상관없이 깃대를 꽂은 채 퍼팅한다. 올해 4개 대회에서 최고 7위의 성적을 낸 디섐보는 “확률상 깃대 퍼팅이 유리하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반면 타이거 우즈, 조던 스피스(이상 미국) 등은 ‘유리하다’는 느낌이 확실할 때만 깃대퍼팅을 하는 ‘선택적 깃대파’다. “마스터스대회 이전에 생각을 정하겠다”던 우즈는 여전히 실험을 끝내지 못한 듯하다. 올해 첫 출전 대회인 파머스인슈어런스오픈과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멕시코챔피언십에서 긴 내리막 깃대퍼팅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우즈가 결정을 유보하는 배경에는 지난해 5월 아널드파머인비테이셔널 최종 라운드 5번홀(파4)에서 겪은 ‘황당한 사건’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이 홀 프린지에서 깃대를 꽂은 채 약 15m짜리 버디퍼트를 시도했다. 그런데 이 공이 하필 깃대 정중앙에 맞고 살짝 뒤로 튕기면서 버디를 놓쳤다. 반면 스피스는 WGC 멕시코챔피언십 2라운드 13번홀(파3)에서 17m짜리 롱퍼팅을 깃대퍼팅으로 성공시켜 좋은 기억을 새겼다.

여자프로들은 좀 더 보수적인 듯하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2년차인 고진영(24·사진) 정도가 완전한 깃대파로 분류된다. 고진영은 올 시즌 3개 대회에 출전해 장·단거리 퍼팅 대다수를 깃대를 꽂은 채 했다. 그는 “더 좁고 확실한 타깃을 향해 퍼트하는 것이어서 집중이 잘된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올해 3개 대회에서 각각 준우승, 3위, 29위를 했다. 그린에 공을 올렸을 때의 평균 퍼팅 순위는 지난해(23위)보다 17계단 오른 6위다.

나머지 선수들은 대개 내리막 롱퍼팅에서만 가끔 깃대퍼팅을 시도할 뿐이다. 박인비(31) 이민지(호주) 김효주(24) 등이 이런 선택적 깃대파다. 세계랭킹 1위(4일 기준)인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은 예전처럼 깃대를 뽑고 퍼팅한다. 임경빈 프로는 “시간이 가고 효과가 검증되면 아마도 깃대를 꽂고 퍼팅하는 선수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깃대퍼팅이 실전에서 유리한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지난 시즌 퍼팅 실력 서열이 32위(SG퍼팅 기준)였던 디섐보는 깃대퍼팅이 허용된 올 시즌엔 91위로 오히려 떨어졌다. 반면 스콧은 같은 기간 165위에서 24위로 수직 상승했다. 이런 엇갈린 결과가 깃대퍼팅의 영향인지, 아니면 스트로크 변화 등 다른 요소 때문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게 판단을 어렵게 한다.

반면 아마추어 골프 라운드에서는 깃대파가 대다수다. 경기 포천의 P골프장 캐디마스터는 “새해 들어 이용자 10명 중 8~9명이 깃대를 꽂고 한다”고 말했다. 새 룰에 대한 호기심과 ‘꽂고 하는 게 유리하다’는 통설이 연초부터 퍼지면서 효과를 확인해보려는 심리가 강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성공률 변화는 거의 없었다는 게 캐디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경기 시간이 단축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깃대 시중’을 들거나 빼고 꽂는 시간이 확연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경기 파주 S골프장 관계자는 “아직은 겨울이라 팀 수가 많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다”면서도 “그늘집 체류 시간을 빼면 얼추 9홀당 5분은 빨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 시간에 큰 변화가 없는 프로 라운드와는 대조적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