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더스] 제로페이 한 달… 매장도 소비자도 외면
"오늘 제로페이를 쓰는 두 번째 손님이세요." 서울시청 인근의 한 식당에서 제로페이 결제를 요구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올해 1월 20일, 서울시가 자영업자들의 카드 수수료 절감을 내세우며 선보인 모바일 간편결제 '제로페이'가 시범 서비스를 시행한 지 한 달을 맞았다. 스마트폰으로 제로페이에 가입한 뒤 자신의 은행 계좌에 연결해 판매자 계좌로 결제대금을 이체하는 서비스다.

하지만 29억 원이나 들여 홍보했음에도 이날부터 1월 4일까지 결제 건수는 일평균 100건 안팎에 그쳤다. 오는 3월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지만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아 외면받기 쉽다는 전망이 많다.

실제로 기자가 식당에서 제로페이를 써보니 곳곳에서 시간이 걸렸다. 스마트폰에 미리 설치해둔 은행 앱을 열고 10초쯤 지나자 로그인을 하라는 지문 인식 창이 떴다. 엄지손가락으로 인증하자 적금 광고가 나타났다. 광고를 지우고 제로페이 버튼을 누르니 비밀번호를 요구했다. 6자리 숫자를 입력하고 나서야 카메라가 작동해 계산대 위의 QR코드를 찍을 수 있었다.
그 후 금액을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눌러 결제를 완료했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주인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입금 여부를 확인하고 나서야 음식점을 나갈 수 있었다. 평소처럼 신용카드를 썼다면 10초도 안 돼 끝났을 텐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제로페이 가맹점을 찾기도 어려웠다. 서울시청이 가까운데도 제로페이 스티커를 문에 붙인 곳이 가뭄에 콩 나듯 보였다. 한 음식점 직원은 "제로페이가 뭔지 모른다"고 했고, 제로페이 광고가 붙어 있는 한 가판점 주인은 "현금만 받는다"고 했다.

제로페이로 결제하면 판매자가 부담하는 수수료가 전년도 매출 8억 원까지 0%, 12억 원 이하 0.3%, 12억 원 초과 0.5%로, 신용카드 수수료보다 0.1∼1.4% 포인트 저렴하다. 그럼에도 서울의 전체 소상공인 업체 66만 곳 중 2만∼3만 곳만 제로페이에 가입한 상태다.
소비자 반응도 싸늘하다. 서울시는 제로페이를 사용하면 연간 40%의 높은 소득공제율을 적용해 연말정산 시 세금을 더 환급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는 신용카드 소득공제율 15%, 체크카드 소득공제율 30%보다 높다.

하지만 체크카드는 제로페이보다 사용하기 편하고, 신용카드는 외상, 할부, 할인, 포인트 적립 등의 혜택이 있어 매력적인 유인책이 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현행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총급여가 연 7천만 원 이하인 경우, 연간 300만 원과 해당 과세연도 총급여액의 100분의 20 중 작거나 같은 금액이 소득공제 한도여서 발목을 잡는다. 소득공제율 40%의 혜택을 제대로 받으려면 소득공제 한도가 늘어나야 하지만 이와 관련된 법은 국회에 발의조차 안 돼 있다.

올해 초부터 카드사들이 시작한 'QR페이' 서비스도 악재다. 신한·롯데·비씨카드가 공동 개발한 이 서비스의 이용 방식은 제로페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카드 수수료 감면이 제로페이보다 적은 대신, 신용카드처럼 외상, 할부, 할인, 포인트 적립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기존의 신용카드 가맹점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선 제로페이보다 QR페이가 더 편하고 유용하다는 게 카드사들의 생각이다. 국민·하나카드 등 여타 카드사도 합류를 검토하고 있어 이 경우 사용자가 제로페이보다 빠르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제로페이는 신용카드와 달리 결제 과정이 불편할 수 있다"며 "이를 뛰어넘는 유인 체계가 있어야 사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자영업자도 "스마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고 언제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데,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내놨다"며 "임대료, 인건비 절감에나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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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