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5억대 팔리는 삼성 IT·가전에 알렉사 연동…아마존이 먼저 제안
삼성전자와 아마존이 세계 인공지능(AI)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적과의 동침’이라는 ‘강수’를 택했다. 양사가 모두 윈윈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e커머스, 클라우드, AI스피커 등 세계 신산업을 선도해온 아마존은 삼성의 휴대폰과 가전제품이 자사 AI 서비스와 e커머스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아마존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애플, 화웨이, 소니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제조회사들의 추격을 뿌리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삼성전자는 아마존을 지렛대 삼아 구글 등 다른 AI업체와의 협업도 강화할 계획이다.

삼성전자에 손 내민 아마존

3일 업계에 따르면 양사 간 협력을 먼저 제안한 곳은 아마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은 2014년 11월 전 세계에서 AI스피커를 처음 선보인 글로벌 AI 서비스 1위 업체다. 아마존의 AI 플랫폼 알렉사와 연동된 서비스는 작년 말 기준 5만6750개에 달한다. 2017년 말 2만5784개에서 불과 1년 만에 2.2배로 불어났다. 삼성전자는 아마존보다 2년6개월 늦은 2017년 5월 AI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의 AI 플랫폼인 빅스비와 연동된 서비스는 아직 두 자릿수에 그친다. 아마존의 AI스피커 ‘에코’에 대항하는 ‘갤럭시홈’은 일러야 올초 출시될 예정이다.

이런 체급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이 먼저 삼성전자에 손을 내민 건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IT 기기와 가전제품 시장의 지배력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2억 대의 휴대폰을 파는 세계 1위 휴대폰 제조사다. TV도 매년 4000만 대씩 판매한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삼성전자가 소비자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제품은 연간 5억 대를 웃돈다. 올해 세계에서 팔린 AI스피커(5030만 대)의 10배 규모다.

아마존은 삼성전자 IT 기기 및 가전제품과 알렉사가 연동되면 e커머스 시장의 지배력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아마존과 삼성전자 제품이 연동되면 침실에 있는 에코쇼를 통해 거실의 삼성전자 TV와 주방의 냉장고를 제어할 수 있다. 반대로 삼성전자 TV 및 냉장고에서 에코쇼를 통해 아마존 온라인몰에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소비자에게 줄 수 있는 편의도 늘어난다. 아마존, 구글과 연동된 서비스를 삼성전자 제품으로 동일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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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빅스비 퍼스트’ 전략은 유지

삼성전자는 자사 제품에선 다른 AI 서비스보다 빅스비를 우선한다는 ‘빅스비 퍼스트’ 전략도 고수했다. TV, 냉장고에서 알렉사를 이용하려면 빅스비를 거쳐 알렉사와 연결이 된다는 의미다. 아마존 또는 구글의 AI 서비스를 제품에서 곧바로 호출할 수 있는 ‘장착’ 방식에 비해 삼성전자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기존의 빅스비 퍼스트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아마존 구글 등 경쟁사와 함께 일할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CES에서 자사 제품을 아마존뿐만 아니라 구글 AI 서비스와도 연계한다는 방침을 밝힐 계획이다. 일각에선 삼성전자의 이런 전략을 빅스비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플랜B(비상계획)’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는 아마존과 AI 협력을 추가로 확대하는 방안도 협의하고 있다. 경쟁사인 구글이 인터넷 검색과 동영상 시장 지배력을 기반으로 AI 시장을 무서운 속도로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글로벌 AI스피커 시장 점유율은 2017년 3분기 75.0%에서 지난해 3분기엔 31.9%로 1년 만에 반토막 났다. 같은 기간 구글의 점유율은 24.6%에서 29.8%로 올랐다. 업계에서도 “삼성전자와 아마존이 구글에 대항하기 위해 협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퍼지고 있다. 시너지가 가장 크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청사진을 함께 그리고 있지만 공개하기엔 아직 시간이 부족하다”며 “올해 CES에선 양사가 일부 협력하는 방안을 우선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