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는 지난달 이후 이달 26일까지 국내 증시에서 4조8665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선 전날 9거래일 만에 368억원어치를 순매수했으나 이날 다시 순매도로 돌아섰다. 한국 주식을 팔아치우고 있는 외국인들은 내년 한국 경제와 증시도 대체로 어둡게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등 경제정책과 외교정책에도 의구심을 갖는 시각이 적지 않다는 게 증권업계의 설명이다.

“한국 증시 급락은 펀더멘털 문제”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19~21일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현지 주요 운용사와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국 경제·투자전략 관련 설명회를 했다. 이번 설명회는 이례적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요청으로 열렸다. 참석 기관도 10여 곳에 달해 예년 수준을 웃돌았다.

韓경제 우려하는 외국인 투자자들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증시 상황과 함께 정부 정책의 향방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박정우 한투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국 증시에 대한 주요 가정과 변수를 점검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느껴졌다”며 “최저임금 인상 등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방향성과 영향에 관한 질문도 쏟아졌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한국 증시가 지난달 겪은 급락장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는 이구동성으로 “한국 증시 낙폭이 다른 국가보다 컸던 것은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증거”라고 진단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증시가 급락했을 때 “펀더멘털은 튼튼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 정부 인식과 상반되는 반응이다. 한 투자자는 “최근 한국을 방문했는데 이전보다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오른 게 피부로 느껴졌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이어 그는 “경기 상황이 좋지 않은데 비용이 계속 높아져 걱정이 된다”며 “최저임금은 계속 올라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과거 일본이 경험한 ‘불황형 흑자’가 한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나왔다. 지난달 외국인 자금 유출로 한국 증시가 급락했지만 외환시장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반도체 등 수출이 늘면서 경상수지가 큰 폭의 흑자를 냈기 때문이다. 이는 경기둔화기에 엔화가 강세를 보였던 일본과 비슷한 형태라는 지적이다.

결론적으로 상당수 외국인 투자자는 내년 1분기까진 한국 주식을 섣불리 사지 않고 기다려보겠다는 시각을 보였다는 게 한투증권의 분석이다. 박 연구원은 “상장사 이익 전망이 어두운 상황에서 반도체 이익 감소와 무역분쟁, 중국·사우디아라비아의 신흥국지수 편입 등 악재가 많다 보니 당분간 한국 주식을 살 이유가 없다고 여기는 듯했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 미·중 외교도 걱정”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과의 경제협력 상황과 외교전에도 궁금증을 나타냈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미국은 확실한 비핵화의 증거를 보여주길 원하지만 북한이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해 걱정”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한 투자자는 “한국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지금은 스탠스가 모호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투증권은 외국인 투자자에게 경기가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는 변곡점이 나타날 시점을 내년 2분기로 제시했다. 이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무역분쟁이 격화되지 않고 중국 경기가 되살아나면 내년 3월 이후 반등을 노릴 수도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