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음식에 담긴 위로·욕망… 문학 속 먹는 행위의 재발견
어머니를 잃은 뒤 식욕을 상실한 소년 시오에게 호비 아저씨는 치즈 토스트를 만들어준다. 보기에는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 시오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퉁명스럽게 군다. 결국 한입 베어 물게 되는데, 예상과 달리 처음 식욕을 느낀다. 전혀 다른 종류이지만 호비 아저씨의 토스트는 시오에게 어머니의 집밥을 먹을 때와 같은 느낌과 위로를 줬다. 이로 인해 시오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따뜻함을 느낀다. 도나 다트의 소설 《황금 방울새》에 나오는 장면이다. 음식이 단순히 식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정과 연결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맛, 그 지적 유혹》은 다양한 문학 작품 속에 숨겨진 음식 이야기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풀어낸다. 저자 정소영은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런던대에서 미디어 및 문화연구로 석사를, 문학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음식을 먹는 것은 일상 행위 중 우리의 정체성이 가장 잘 투영돼 있다. 책은 작품 속에서 당대의 정치와 사회, 문화적 특성들을 반영하는 은유의 도구로서의 음식에 대해 풀어낸다.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인문학적 장치로서의 음식이다. 저자는 “식욕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각자가 속한 사회의 모든 요소와 상호작용하며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문학 작품 속엔 이 상호작용이 서사와 묘사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들이 먹는 음식과 음식을 대하는 태도, 이면의 이야기들은 작품 속 인물과 상황에 입체성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도 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엠마》의 주인공 엠마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뽐내기 위해 저녁 식사에 손님들을 초대하고 베이츠 씨네 집에 돼지고기를 보낸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선 초록빛 민트줄렙과 샤르트뢰즈란 음식이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꿈을 좇는 개츠비의 무모한 도전을 묘사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음식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독특하면서도 유쾌한 설정도 등장한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에선 시녀들이 버터를 로션처럼 사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버터를 먹지 않고 몸에 바르는 것은 음식과 그녀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여성성을 억압하고 태아를 담는 용기로 취급하는 정권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담고 있다.

시녀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주체성을 지켜나가면 언젠가는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저자는 “음식은 한 시대를 관통하는 문화 현상으로, 욕망과 유희의 대상으로, 때로는 위로와 희망의 상징으로 작용한다”며 “음식의 관점에서 책을 대하면 문학을 각자의 일상과 좀 더 밀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정소영 지음, 니케북스, 360쪽, 1만9000원)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