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호모글로벌리스 (6)] 언어의 경연장 유엔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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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9월 셋째 주 화요일 미국 뉴욕에서 개회하는 유엔 총회에서는 세계 각국의 고위 대표가 연설을 한다. 보통 100명 이상의 국가 대표가 연설하므로 가히 언어의 경연장이라고 할 만하다. 많은 대표가 연설하므로 대표당 시간은 15분으로 제한된다. 제한 시간을 넘긴다고 해서 제재를 받거나 마이크가 꺼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대표는 외교 예양상 시간 제한을 준수한다.
유엔의 역사를 보면 제한 시간을 초과해서 연설한 대표도 상당수 있다. 유엔의 공식기록에서 가장 긴 연설을 한 사람은 1957년 크리슈나 메논 주(駐)유엔 인도대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장장 9시간이나 쉬지 않고 연설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의장은 1960년 유엔 총회에서 4시간29분 동안 연설했다. 2009년 96분 연설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걸쭉한 입담과 강철 체력에 세계는 혀를 내둘렀다.
최장 9시간 연설… 구두로 책상 치기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무대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려다 보니 해프닝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60년 유엔 총회에서 구두를 벗어 책상을 두들겨 댄 것은 유명한 일화다. 흐루시초프가 돌발 행동을 한 것은 유엔 총회에서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쓴 회고록에는 스페인 프랑코 정부 대표단과의 언쟁 과정에서 신발을 벗어 책상을 친 기록이 있다. 공격적인 행동으로 상대편을 위축시키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임을 추측하게 한다. 이 사건 이후 구두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보다 더 유명한 정치적 표현 수단이 됐다. 2008년 말 한 이라크 기자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에서 신발을 집어 던진 것이 한 예다.
1974년 유엔 총회 본회의장에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이 연단에 섰다. 그는 시오니즘을 비판하면서 “오늘 나는 올리브 가지와 자유전사의 총을 가지고 왔습니다. 올리브 가지가 내 손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올리브 가지가 평화를 상징한다면 권총은 무장투쟁을 의미한다. 평화와 무력 중에서 평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는 무대를 연출한 것이다. 아라파트는 연설 내내 권총집을 차고 있었으나 권총은 없었다.
필자는 2006년 총회에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지켜본 바 있다. 그는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 놈 촘스키의 책 《패권인가 생존인가》를 들고나와 일독을 권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라고 부르면서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지배, 착취 및 약탈을 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히 세기의 독설가를 보는 듯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자신이 사살되기 2년 전인 2009년 총회에서 파격적인 연설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테러이사회’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엔헌장 사본을 찢어버린 것이다.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해 “아프리카의 아들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해 청중을 당혹하게 했다.
제한시간을 초과하는 긴 연설은 효과적이지 않다.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게티즈버그 연설이 1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이 연설을 통해 짧으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저주와 분노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자주 사용했던 말이 있다. “생각은 말을 만든다. 말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습관은 인격을 만들고 인격은 운명을 만든다.” 결국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말이다. 더군다나 나라를 대표하는 리더의 언어는 국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김정은의 유엔 총회 연설 가능할까
혹자는 행동은 없고 말(주장)만 무성한 잡담 장소로 유엔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엔 총회 연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 기회를 통해 약소국의 리더들도 세계를 향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인류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 다른 나라의 리더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견을 교환할 수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복귀하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 가능한 무대가 바로 유엔 총회다. 연설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명백하게 밝힌다면 북한이 더 이상 국제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더불어 협력해야 할 파트너임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오늘날 유엔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회원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 각국이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되듯이 인류는 회원국 수준에 맞는 유엔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스웨덴 출신으로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다그 함마르셸드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엔은 인류를 천당으로 이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창설됐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
유엔의 역사를 보면 제한 시간을 초과해서 연설한 대표도 상당수 있다. 유엔의 공식기록에서 가장 긴 연설을 한 사람은 1957년 크리슈나 메논 주(駐)유엔 인도대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장장 9시간이나 쉬지 않고 연설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의장은 1960년 유엔 총회에서 4시간29분 동안 연설했다. 2009년 96분 연설한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걸쭉한 입담과 강철 체력에 세계는 혀를 내둘렀다.
최장 9시간 연설… 구두로 책상 치기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무대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려다 보니 해프닝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60년 유엔 총회에서 구두를 벗어 책상을 두들겨 댄 것은 유명한 일화다. 흐루시초프가 돌발 행동을 한 것은 유엔 총회에서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쓴 회고록에는 스페인 프랑코 정부 대표단과의 언쟁 과정에서 신발을 벗어 책상을 친 기록이 있다. 공격적인 행동으로 상대편을 위축시키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임을 추측하게 한다. 이 사건 이후 구두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보다 더 유명한 정치적 표현 수단이 됐다. 2008년 말 한 이라크 기자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장에서 신발을 집어 던진 것이 한 예다.
1974년 유엔 총회 본회의장에는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이 연단에 섰다. 그는 시오니즘을 비판하면서 “오늘 나는 올리브 가지와 자유전사의 총을 가지고 왔습니다. 올리브 가지가 내 손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올리브 가지가 평화를 상징한다면 권총은 무장투쟁을 의미한다. 평화와 무력 중에서 평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는 무대를 연출한 것이다. 아라파트는 연설 내내 권총집을 차고 있었으나 권총은 없었다.
필자는 2006년 총회에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연설하는 것을 지켜본 바 있다. 그는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 놈 촘스키의 책 《패권인가 생존인가》를 들고나와 일독을 권하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라고 부르면서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지배, 착취 및 약탈을 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히 세기의 독설가를 보는 듯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자신이 사살되기 2년 전인 2009년 총회에서 파격적인 연설을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테러이사회’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엔헌장 사본을 찢어버린 것이다. 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해 “아프리카의 아들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해 청중을 당혹하게 했다.
제한시간을 초과하는 긴 연설은 효과적이지 않다.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게티즈버그 연설이 1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이 연설을 통해 짧으면서도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저주와 분노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자주 사용했던 말이 있다. “생각은 말을 만든다. 말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습관은 인격을 만들고 인격은 운명을 만든다.” 결국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말이다. 더군다나 나라를 대표하는 리더의 언어는 국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김정은의 유엔 총회 연설 가능할까
혹자는 행동은 없고 말(주장)만 무성한 잡담 장소로 유엔을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엔 총회 연설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 기회를 통해 약소국의 리더들도 세계를 향해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인류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 다른 나라의 리더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견을 교환할 수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기를 바라는 이유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복귀하는 데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 가능한 무대가 바로 유엔 총회다. 연설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명백하게 밝힌다면 북한이 더 이상 국제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더불어 협력해야 할 파트너임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오늘날 유엔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개혁의 성공 여부는 회원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 각국이 국민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되듯이 인류는 회원국 수준에 맞는 유엔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스웨덴 출신으로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다그 함마르셸드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엔은 인류를 천당으로 이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창설됐다.”
박희권 < 글로벌리스트·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