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오는 6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그동안 준비해온 대규모 투자와 상생협력 방안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대기업에 투자와 고용을 압박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는 일부 시각에 기재부가 곤혹스러워하는 데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완성도 있는 성과물을 내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지난달 인도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한경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지난달 인도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한경DB
3일 기재부와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김 부총리가 6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회사의 중장기 투자와 고용, 상생협력 방안을 발표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삼성전자는 이 자리에서 100조원이 넘는 중장기 투자 계획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중장기 기업 혁신 전략’을 발표하기 위해 준비해 왔다. 하지만 기재부 측으로부터 김 부총리 방문 당일 투자와 고용 계획을 발표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전달받으면서 발표를 연기하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기재부는 삼성 측에 최대한 발표 시기를 신중하게 결정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민간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 위해 압박했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민간 대기업 압박에 나섰다는 논란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삼성전자 인도 노이다 휴대폰 공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면담한 이후 여권 지지층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계획 발표는 기업의 자체 판단에 따라 결정한 것”이라며 “김 부총리는 기업 측에 투자와 고용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했다.

삼성 측도 김 부총리의 반도체 공장 방문이 정치적으로 확대해석되는 것을 크게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김 부총리의 방문 계획과는 별개로 지난 2월 이 부회장이 뇌물죄 항소심에서 풀려난 뒤부터 약 6개월 동안 노희찬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CFO) 주관으로 회사의 중장기 발전 방안을 검토해 왔다.

삼성전자가 나중에 발표할 중장기 혁신 전략엔 반도체, 휴대폰 등 주력사업뿐 아니라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을 담보할 투자 계획과 혁신 생태계 조성 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실용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 담길 것으로 알려져 삼성 내부 임직원들의 관심도 크다”고 귀띔했다.

삼성전자는 투자 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6일 이사회를 여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정부 측 의견을 받아들여 이사회 개최와 발표 시점을 연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김 부총리와의 간담회 자리에 나올 예정이었던 이 부회장의 참석 여부도 불확실해졌다. 이 부회장은 유럽 지역을 출장 중이며, 일요일인 5일 귀국한 뒤 간담회 참석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좌동욱/김일규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