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대법관 14명 중 8명 임명… 노동사건부터 변화 예고
신임 대법관 세 명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 과반을 차지하게 됐다. 오는 11월 김소영 대법관이 떠나면 14명의 전체 대법관 가운데 9명이 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로 채워지게 된다. 법조계에선 진보 성향 정부에서 임명된 대법관들이 사법부의 ‘좌회전’을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신임 김선수 대법관(사법연수원 17기)은 취임 전부터 노동사건 판례 재검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 대법관 14명 중 8명 임명… 노동사건부터 변화 예고
대법원은 2일 김 대법관을 비롯해 이동원(17기)·노정희(19기) 대법관이 취임했다고 밝혔다. 대법관 임기는 6년이다. 김 대법관은 대법원 소부 1부에, 노 대법관과 이 대법관은 각각 2부와 3부에 배정됐다.

이들이 대법원에 입성하면서 현 정부에서 임명된 대법관은 모두 8명으로 늘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김명수 대법원장(15기)을 비롯해 조재연(12기)·박정화(20기)·안철상(15기)·민유숙(18기) 대법관을 임명해왔다. 오는 11월에는 김소영 대법관이 물러나 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은 9명으로 늘어난다. 문 대통령은 임기 중에 김재형 대법관을 제외한 13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신임 대법관 가운데 김 대법관이 세간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그는 대법관으로선 처음으로 30여 년간 변호사 활동만 한 순수 재야 출신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 출신으로, 노동법 전문가로 법조계에서 대표적인 진보 성향 인물로 꼽힌다. 법조계에서는 통상임금, 해고무효 등 대법원에 올라온 각종 노동사건 판결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주목하고 있다. 김 대법관은 취임에 앞서 “노동사건 판례들을 전체적으로 재검토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에는 현대·기아차 사내 하청 근로자 360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등이 계류 중이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노조 갈등 과정에서의 손해 문제로 2011년 회사로부터 당한 100억원대 배상 소송도 대법원에 6년째 발이 묶여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의혹’ 사건도 향후 검찰의 기소를 거쳐 대법원에 올라가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에 대한 판례가 현 대법원 구성원으로부터 상당 부분 나온다는 이야기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법외노조 철회 여부 관련 사건도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국정농단’ 관련 주요 사건도 대법원으로 넘어간다.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상고심은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가 심리 중이다. 오는 24일 항소심 선고가 예정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사건이 대법원으로 올라오면 3부에서 병합해 심리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들 세 명에 대한 재판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전원합의체에 회부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대법관들이 대폭 물갈이되면서 단기적으로 피고인들의 재판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법원에 올라간 사건은 1·2·3부로 배당된다. 전자 배당을 기본으로 한다. 한 대형로펌 대표변호사는 “노동 관련 사건이 ‘친노동’ 성격인 김 대법관이 속한 1부에 배당되는 걸 회사 측에서는 자연스레 꺼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의 합의로 이뤄지는 전원합의체 판결 변화도 주목된다. 대법원은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있거나 파급력이 큰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긴다. 법조계 고위 관계자는 “전원합의체 의결은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출석인원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되는 만큼 대법관 한 명의 신념이나 의견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전원합의체에는 ‘정치적’ 사건들이 산재해 있다. 그중 하나가 최근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해 곧 심리가 시작될 예정이다. 법조계에선 지난 5년간 심리를 미뤄왔던 대법원이 이제야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신연수/고윤상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