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이 엘리엇매니지먼트에 이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카드를 꺼내들면서 대법원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1·2심 판결 내용을 근거로 ISD 소송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두 헤지펀드는 자신들의 손해액이 900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대법관 13명에게 달린 9000억원 소송

ISD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인한 손해 발생’이 입증돼야 한다. △정부가 개입했는지 △부당한 개입인지 △자신들이 손해를 봤는지 등이 입증돼야 한다. 각 쟁점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판단이 엘리엇의 무기로 변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ISD 9000억 소송, 대법관들 손에 달렸다"
이 소송과 직접 관련된 사건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사건이다. 나머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이다.

문 전 장관 관련 사건의 요지는 그가 국민연금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해 합병 찬성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함께 기소된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1·2심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부하직원에게 “합병이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 등을 증거로 삼아 문 전 장관이 국민연금공단 의결권 행사에 개입하도록 지시했다고 봤다. 홍 전 본부장에 대해서는 부하직원으로 하여금 합병 시너지 수치를 조작하도록 하고 이를 투자위원회에서 설명한 혐의를 받았다.

1·2심 재판부 모두 홍 전 본부장의 행위가 배임은 맞지만 손해액은 산정할 수 없다고 봤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당시에는 합병이 실패할 경우 국민연금에 큰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는 게 시장의 지배적 시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관련 사건에서는 ‘승계 작업’의 존재를 대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가 ISD에 영향을 끼친다. 1심 재판부에서는 승계작업이 존재했다고 봤고, 2심 재판부는 승계작업이 허구의 프레임이라고 인정했다. 대법원에서 ‘승계작업 프레임’을 인정하면 정부의 ‘부정한 개입’도 자연스레 뒷받침될 수 있다.

◆대법관 구성 변화의 영향에 ‘주목’

대법관들이 내놓는 개별 판단 하나 하나가 ISD가 시작되면 엘리엇·메이슨에 유리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한 대형로펌 국제중재 변호사는 “엘리엇 측이 기존 1·2심 판결문을 갖고 ISD를 시작하려 하지만 결국 대법원 판결문이 결정적 증거로 활용될 것”이라며 “수천억원의 혈세가 걸린 재판이 됐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관련 사건 전체를 병합해 전원합의체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전원합의체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고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나머지 대법관 12명으로 구성된다. 대법관 구성 변화가 결론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김 대법원장은 지난 2일 김선수 변호사, 이동원·노정희 판사를 대법관으로 임명제청했다. 김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 출신이다. 노정희 판사도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 모임이었던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한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전원합의체는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되는 만큼 한두 명의 판단이 전체 결과를 바꿀 수 있다”며 신중한 판단을 주문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