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기촉법보다 중요한 '구조조정 원칙'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업구조조정 관계기관 회의. 회의를 주재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실효돼 안타깝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부실기업 워크아웃 제도의 근거가 되는 기촉법은 지난달 30일자로 자동 폐기됐다. 김 부위원장은 “재입법을 위해 국회가 적극적인 검토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촉법은 채권단 100% 동의를 얻어야 하는 자율협약과 달리 채권단의 75%만 동의하면 워크아웃을 진행할 수 있다. 법에 명시된 절차이기 때문에 신속한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기촉법이 사라지면서 많은 기업이 법정관리로 직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촉법이 실효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1년 제정된 이래 시효가 끝난 뒤 다시 제정되는 일이 세 차례나 되풀이됐고 이번에 네 번째로 효력이 다했다. 이유가 뭘까. 일부 의원과 시민단체는 금융당국이 기촉법을 활용해 정부 입맛대로 구조조정을 해 왔다고 주장한다. 또 채권자(은행) 손실을 보전하는 데만 급급한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은행들은 어떨까. 한 은행 임원은 “워크아웃은 겉으로는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이지만 사실상 금융당국이 은행에 암암리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털어놨다.

양측 모두 ‘관치금융’이 기촉법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며 이 때문에 금융당국 요청에도 기촉법이 연장되지 않았다고 진단하고 있다. ‘기촉법=관치금융’이란 인식이 사라지지 않고선 기촉법 논란은 여전할 것이다. 정부가 이를 극복하려면 구조조정 원칙을 엄정히 지키는 길 말고는 없다. 올 들어 금호타이어와 STX조선 구조조정 때 채권단이 자율협약서 제출 마감 시한을 연장해 주는 등 원칙을 스스로 어기고선 기촉법 연장을 기대하긴 힘들다.

정부가 그간 강조해온 구조조정 3대 원칙은 ‘엄정 평가’ ‘자구노력’ ‘신속 집행’이다. 정부도 2016년 기촉법 재발효 당시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엔 신규 자금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기촉법 재입법에 앞서 정부가 스스로 내세운 구조조정 원칙을 지키는 게 우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