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체 LF는 최근 1년간 수수료를 내는 가두매장 수십 곳의 문을 닫았다. 온라인에서 운영하는 LF몰 판매가 급증해 이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남성패션업체 칸투칸은 2014년 11번가 등 오픈마켓에서 빠져나왔다. 수십만 개 제품이 입점한 오픈마켓에서는 차별화가 불가능했다. 팔아도 판매가의 9~10%를 수수료로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자체 온라인몰을 열었다. 유통 수수료를 질 좋은 재료에 썼다. 칸투칸은 매출 600억원대 회사로 성장했다.
백화점·오픈마켓 '패싱'… 유통 거품 뺀 'D2C' 뜬다
제조업체가 백화점 등 유통단계 없이 자체 온라인몰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D2C(direct to consumer)가 새로운 사업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게 D2C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용자와 직접 소통함으로써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이를 마케팅과 신제품 개발에 활용할 수도 있다. 국내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부터 중견기업 대기업까지 D2C 모델을 도입하고 있다.

◆“100원짜리 면도기, 원가는 5원”

빅토리아 베컴은 올봄 ‘2018 가을겨울 신제품 패션쇼’를 한 다음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썼다. “어제 뉴욕에서 발표한 신제품을 선주문할 기회를 드립니다. 지금 빅토리아베컴닷컴에서 가방 신발 선글라스 등 모든 제품을 주문할 수 있어요.” 가격거품이 심한 패션업계에서 시작된 D2C 트렌드는 안경테 매트리스 면도기 등 생활용품으로 확산되고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자체 온라인몰 판매를 늘린다는 소식에 스포츠용품 소매체인점 풋라커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미국 면도기 D2C업체 달러셰이브클럽을 벤치마킹한 스타트업이 생겼다. 와이즐리다.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는 한국P&G에 다니면서 세계 1위 면도기 질레트의 가격 거품이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 달러셰이브클럽, 해리스 등을 벤치마킹해 지난해 9월 와이즐리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면도기 가격이 100원이면 원가는 5원 이하”라며 “유통 광고 비용과 질레트가 가져가는 이익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와이즐리는 독일산 면도날을 적용한 면도기를 질레트의 3분의 1 가격에 정기 배송해준다.

◆SNS 등 확산이 사업 기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타깃 광고 기술 등의 발달은 D2C 사업 모델 확산의 중요한 기반이 됐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 시중 제품의 절반 가격에 매트리스를 판매하는 삼분의일 등도 D2C 스타트업의 한 예다.

국내 대기업 중견기업들도 D2C 사업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 LF와 주얼리업체 제이에스티나가 대표적이다. 제이에스티나가 자체 운영하는 제이에스티나몰은 출범 2년 만에 월 방문자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 여기서만 월 10억원, 연간 12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전체 매출의 약 8%다. 김성욱 제이에스티나 플랫폼디비전부문장(이사)은 “주얼리 매장 20개를 합쳐야 나오는 매출 규모”라며 “올해는 전체 매출의 10% 정도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온라인몰 운영 비용은 훨씬 적게 든다. “주얼리 매장 1.5개 운영 비용밖에 들지 않는다”고 김 이사는 설명했다.

◆크라우드펀딩 D2C 확산 촉매

크라우드 펀딩과 결합한 D2C도 확산하고 있다. 시제품을 온라인몰을 통해 공개한 뒤 먼저 주문받는다. 일정량 이상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받은 만큼만 제품을 생산해 직접 배송해준다. 제조업체는 재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는 재고 비용만큼 싼 가격에 제품을 살 수 있다. LF는 지난해 10월 LF몰을 통해 마이슈즈룸이란 크라우드 펀딩 형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질바이질스튜어트 브랜드의 앵클부츠 등 네 종의 신발을 기획해 LF몰을 통해 공개했다. 제품당 최소 주문량의 세 배가 넘는 주문이 들어왔다. 루이까또즈, 에뛰드하우스 등도 최근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핸드백과 색조 화장품 등을 판매했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크라우드 펀딩 방식의 D2C 사업 모델을 도입하면 유통망 개척, 초기 생산물량 예측, 재고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빈 병 위에 뚜껑처럼 올려놓는 코르크 스피커를 제작한 이디연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집한 자금을 생산에 투입한 성공모델로 꼽힌다. 코르크 스피커는 입소문을 타고 다섯 번의 크라우드 펀딩으로 이어졌다.

크라우드 펀딩 기업 와디즈의 신혜성 대표는 “초기엔 틈새시장을 겨냥한 아이디어 상품 위주로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됐으나 유통망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