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이도령은 숙종, 춘향이는 인현왕후?
‘숙종대왕 즉위 초에 성덕이 넓으시사….’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의 첫머리 부분이다. 조선왕조 19대 왕 숙종은 어떻게 200년 넘게 판소리로 불리고 여러 판본으로 출간되며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춘향전’의 시대적 배경 인물로 들어오게 됐을까. 평생 춘향전 연구에 몰두해온 김현주 서강대 국문과 교수는 이도령과 숙종, 춘향과 왕의 여자들의 ‘닮은꼴’에 주목한다.

춘향은 기생의 딸이라는 점에서 ‘숙종의 여자’인 장희빈, 최숙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후에 ‘정렬부인’이란 작호를 받을 정도로 신분 격차를 단번에 뛰어넘는 점에서도 그렇다. 춘향이 옥중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낸 것은 폐비가 돼 일반 사가에서 뼈저린 고통의 세월을 보낸 인현왕후와 비슷하다. 이도령은 한 번 버린 여자를 결국 잊지 않고 찾아와 버려진 세월을 보상해주는 의협남이 된 것처럼 숙종도 어찌 됐든 간에 인현왕후를 다시 복위시키는 의리있는 남자가 됐다. 김 교수는 “사랑의 버려짐과 극적인 반전을 이뤄내는 춘향의 이야기를 지으면서 또는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현왕후의 처지와 관련해 숙종 시대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상 작용이 아니었을까”라고 묻는다.

김 교수는 《춘향전의 인문학》에서 춘향전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를 대표적인 10장면을 통해 속속들이 파고든다. 당대의 관점에서 춘향전 작품을 짓고 향유했던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가 문화적 상상력을 펼쳐놓는다. 저자는 “춘향전은 당시 사회와 문화를 다양하고 폭넓게 보여주는 텍스트”라며 “주요 인물이나 사건보다 사소한 일과 기물, 배경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아카넷, 328쪽, 1만6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