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속성이 너무 다른 한국과 일본의 국가 채무
우리는 보통 ‘얼마나 버는가’라는 소득을 기준으로 ‘얼마나 쓰는가’를 정한다. 나라살림에서 얼마나 버는가의 척도는 국내총생산(GDP)이다. 국가채무를 가늠할 때도 GDP 대비 비중을 들곤 한다. 2016년 말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한국 39.3%, 일본 232.4%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한국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이 일본에 비해 현격히 낮으므로 빚을 낼 여력이 충분하다고 곧잘 언급된다. 그럴듯하게 들리기에 빚을 내더라도 선거민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에게는 큰 유혹으로 다가온다. 한데 국정운영에서 그 유혹을 제어하지 못하면 함정에 빠지고 만다. 가계 순자산(자산-부채), 대외 불안정성, 국민성을 잣대로 나랏빚이 늘어날 때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짚어보자.

우선 ‘얼마나 모았는가’를 나타내는 가계 순자산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월등히 적다. 쌓아 놓은 재산도 많지 않으면서 빚을 크게 늘리면 위험 수위가 높아진다. 가계(민간비영리단체 포함)가 보유하는 순자산은 일본이 2경4133조원, 한국이 7179조원으로 일본이 3.4배나 많다(일본 내각부 및 한국은행 통계에 의거해 계산, 2015년 수치). 일본 인구(1억2700만 명)가 한국보다 2.5배 많다는 점에서도 일본의 가계 순자산이 한국을 크게 능가함을 알 수 있다. 이는 국채 발행을 늘릴 때 한국의 가계가 일본보다 그 소화 능력이 부족함을 뜻한다.

다음으로 한국은 일본에 비해 대외 불안정성이 높다. 일본이 1경원이 넘는 엄청난 채무를 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외국인의 일본 국채 보유 비율은 10.5%에 불과하다(2016년 말). 외국인 투자자 보호를 앞세우는 한국에서 외국인이 한국 국채를 얼마나 보유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채 발행이 늘어나고 있고, 가계의 국채 인수 여력도 크지 않다는 점에서 보면 외국인의 한국 국채 보유 비율이 늘어났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외국인은 내국인에 비해 국채 수익률(이자율)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띤다. 이를 감안하면 국채 발행 증대가 초래하는 대외 불안정성은 한국이 일본에 비해 높다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 정주성(定住性)이 강하다는 국민성을 들 수 있다. 붙박이 정주성을 보이는 일본에선 국가가 파탄난다 하더라도 나라를 떠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일본의 폐쇄성을 반영하는 단면이겠지만, 달리 보면 일본으로 유입된 부(富)의 국외 유출이 적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국에서 1997년 말 금융위기가 있었고 그 극복을 위해 산업구조조정이 한창이었을 때 많은 능력자가 한국을 떠나기도 했다. 뛰어난 인재들이 떠나가면 한국 내에서 부를 일궈낼 기회도 그만큼 줄어든다.

일본은 가계 금융자산으로 국채를 대량 소화하고 있다. 즉 대외 국가채무가 많은 게 아니라 가계가 채권자고 정부가 채무자인 정부 부채가 많은 셈이다. 아베노믹스에선 일본은행도 40% 정도 국채를 떠안고 있다(39.1%, 2016년 말). 한국이 일본처럼 재정운영을 하라는 주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한국과 일본은 양적(가계 순자산 규모), 질적(국민성)으로 극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에서 국채 증발(增發)을 감당할 여력이 달리는 한국에서 정부가 빚을 많이 내게 되면 외국인 대상 국가 채무 증대로 직결된다. 일본은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버텨왔지만, 한국이 섣불리 빚더미를 늘리다간 ‘잃어버린 5년’도 못 견딜까 걱정된다.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