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경기 포천시의 영업용 화물자동차 차고지. 관리자 홀로 화물차 한 대 없는 차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지난 22일 경기 포천시의 영업용 화물자동차 차고지. 관리자 홀로 화물차 한 대 없는 차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인근에 군부대가 훤히 보이는 경기 포천시 관인면 삼율리 198의 2.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지만 엄연히 포천시에 등록된 영업용 화물자동차 차고지다. 인근 주민은 3년 전만 해도 논밭이던 이곳이 자기도 모르는 새 차고지로 바뀌었다고 했다. 3년 동안 화물차 한 대 들어온 적도 없다고 했다. 바닥은 폐자재로 다져졌다. 본래 토지 주인이자 지금은 관리자가 된 장모씨(57)는 “나중에 용도가 바뀌어도 쓸모없는 곳이 돼 버렸다”고 했다.

인근 차고지 관리자는 “차고지를 영업용 화물차를 가진 개인에게 빌려주고 브로커에게서 돈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터넷에는 수많은 차고지 증명 대행업체가 있다. 중고차를 사면 무료로 차고지를 증명해 준다. 한 알선업자는 “(소개해줄 차고지는) 주차를 위한 것이 아니라 허가를 받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중량에 따라 연간 20만~35만원만 내면 화물차 영업허가에 필요한 차고지증명 서류를 발급해 준다.

영업용 화물자동차 허가를 받을 때 차고지증명을 의무화한 차고지증명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명된 차고지에 주차하는 운전기사는 없다고 봐도 된다는 게 대행업체 관계자 전언이다. 차고지를 활성화해 위험한 도심 불법주차를 없애겠다는 차고지증명제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것이다.

차고지는 현장 확인이 어려운 파주, 연천, 포천, 용인, 화성 등 경기 외곽에 밀집해 있다. 포천의 경우 사설 차고지는 4738개에 달한다. 파주, 용인, 화성에 있는 차고지는 각각 1000여 개를 웃돈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는 차고지 약식도면, 토지등기부등본이나 토지대장, 차고지 임대계약서 등 요건만 갖추면 현장 확인 없이 차고지 허가를 내주고 있다. 실제 주차가 가능한 곳에 있는지,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지, 펜스는 있는지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이다. 담당 공무원들은 “지자체당 차고지 허가 담당 공무원이 한 명에 불과하다”며 “모든 차고지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일반화물자동차운송사업 허가를 받으려면 화물자동차 한 대당 해당 화물자동차 길이와 너비를 곱한 면적의 차고지증명을 제출해야 한다. 화물차량은 사업자 등록지 반경 4㎞ 이내에 차고지를 갖춰야 영업허가가 나온다.

하지만 규제완화 차원에서 주사무소 또는 영업소가 시·군에 있는 경우 그 시·군이 속하는 도와 맞닿은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에 있는 공동차고지, 공영차고지, 화물자동차 휴게소, 화물터미널 또는 지자체 조례로 정한 시설을 차고지로 이용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경기 외곽에 차고지가 급증했다.

차고지증명제가 유명무실화하자 화물차가 불법주차된 도로의 운전자나 주택가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파주시에 사는 고모씨(33)는 “차를 몰아 퇴근할 때마다 아파트 입구로 향하는 우회전 차선에 화물차가 세워져 있어 수십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며 “담당 구청은 수백 건의 민원을 받은 뒤에야 처리에 나섰다”고 꼬집었다.

소관 부서인 국토교통부는 “지자체와 협의해 차고지증명제 개선안을 찾고 있으나 대책 마련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일단 국정과제로 전국 영업용 화물자동차 45만 대의 60%까지 수용할 수 있도록 공영차고지를 확충할 계획이다. 한 지차체 관계자는 “차고지 허가를 받기 위해 내야 하는 서류 요건을 지금보다 강화하고, 거주지 제한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차고지증명제

차고지 연계 자동차 등록제. 영업용 화물자동차를 허가받는 경우 행정기관에 차고지 확보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운행을 허가하는 제도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