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북한-중국 송유관
2003년 2월 말 북한 지도부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예고없이 잠가버렸기 때문이다. 중국은 ‘송유관 수리’를 이유로 내세웠다. 실제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뒤 대화 요구를 거부한 데 대한 보복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은 중국에 대화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은밀하게 밝혔다. 중국은 사흘간 송유관을 잠근 뒤 밸브를 다시 열었고, 북한은 석 달 뒤 1차 북핵 6자회담에 참석했다.

북한은 매년 100만t 이상의 원유를 중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소비량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나머지 일부는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3개월만 잠그면 북한 경제는 마비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송유관은 북한으로선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중국의 송유관 차단 조치에 북한이 비상한 반응을 나타낸 이유를 알 만하다.

중국이 최초로 북한에 원유를 지원한 것은 1962년이다. 소련과의 분쟁 와중이었다. 마오쩌둥으로선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양다리 외교를 구사한 북한 김일성을 우군(友軍)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다. 1971년 북·중은 ‘중요물자상호원조협약’을 맺었고, 지속적인 대북 원유공급을 위해 송유관을 건설키로 했다. 송유관이 완공된 것은 1976년 1월. 공식 명칭은 ‘중조우의수유관(中朝友誼輸油管)’이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있는 유류 비축기지와 북한의 신의주 인근 정유시설(봉화화학공장)을 잇는 약 30㎞의 이 송유관은 지금까지 북한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하원이 어제 북한의 원유 수입을 봉쇄하는 내용이 담긴 북한·러시아·이란 일괄 제재법안을 통과시켰다. ‘키’를 쥐고 있는 중국은 송유관을 잠그는 것에 부정적이다. 자칫 북한 붕괴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선 북한은 ‘순망치한 (脣亡齒寒)’의 존재와 같다. 밉더라도 북한이라는 입술이 없어지면 중국이라는 이가 시리다는 얘기다. 북한이 사라질 경우 자칫 한·미 연합군과 대치하는 군사적 부담에 직면할 수 있다.

러시아가 북한의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한반도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있다. 김정은은 2013년 친중파인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자 러시아와 밀착했다. 올해 1~5월 러시아의 대북 원유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배 이상 증가한 것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이 국제사회 제재에 아랑곳 않고 도발에 나서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 ‘외줄타기 전략’이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와중에 제재·대화 병행론을 강조해 온 한국과 제재·압박에 무게를 둔 미국의 시각차도 드러난다.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