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의 논점과 관점] '장마당 육성 프로젝트' 해보자
지난해 북한 경제가 3.9% 성장했다는 한국은행 보고서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보여준다. 2.8% 성장한 우리와 비교는 자성(自省)의 의미라고 치자. 교역 규모 138배, 국내총생산(GDP) 45배 격차여서 군사력은 몰라도 경제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공산주의 계획경제가 벌려 놓은 이 거대한 격차는 세계의 교과서감이지만 정작 대한민국은 그 의미를 모르거나 외면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북한 3.9% 성장배경 '중국·장마당'

북한 경제가 17년 만에 최고 성장한 게 김정은이 잘해서일까. 한은은 2015년 경제가 나빴다며 ‘기저효과’로 인한 고성장이라는 점부터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출입이 모두 늘어난 사실에 주목했다. 수출(28억달러), 수입(37억달러) 모두 4% 후반대로 늘어났다.

알려진 대로 북한의 수출입 주 상대는 중국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국면이지만 ‘민생 목적’이라는 명분 아래 중·북 교역은 계속되고 있다. 석탄을 꾸준히 사는 곳도 중국이다. 대북 경제제재의 핵심 열쇠를 쥔 곳은 변함없이 중국이다. 하지만 중국의 지렛대는 실제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북한 경제가 여실히 보여준다.

적당히 말로나 나무라온 중국이 북한 제재에 나서게 하는 것이 북핵 해결의 관건이다. 하지만 현실은 계속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한·중 정상회담 때 중국 쪽에서 중·북은 혈맹관계라는 언급까지 나오게 하고 말았다. 최근 미·중 고위급 경제대화가 그 흔한 결과 브리핑도 없이 얼굴만 붉힌 채 끝난 것도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제재하겠다는 미국 통보에 중국 대표단이 반발하면서 비롯됐다. 중국이 움직이도록 하는 국제 공조에 우리 정부도 더 적극 나서야 한다.

북한 경제가 악조건 속에서도 고성장한 또 다른 요인은 ‘장마당’이다. 공식적으로는 436개(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로 파악됐지만 뒷골목 것까지 합치면 1000개를 넘었다는 분석도 있다. 2003년 장마당이 공식 허용된 지 13년, 대단한 기세다.

장마당이야말로 북한 기아경제의 기적이고 탈출구다. 1990년대 중·후반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로 빚어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이래 북의 기아는 늘 국제적 인권 이슈였지만, 최근 들어 ‘대량 아사’ 같은 극단적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장마당, 곧 시장의 힘이다. 경쟁과 인센티브는 태산도 움직인다. 북한 정권이 수십 년째 못한 기초 식량 공급이 장마당이라는 초보적 단계의 시장에서 어느 정도 조달되는 것이다. 독립채산제 기업도 나왔고, 이런 사업체에 자율권도 확대됐다고 한다. 장마당의 주요 업체는 대개 당간부 소유거나 그들이 뒷배를 봐주는 것이라는 게 통설이다. 이윤이 꾸준히 창출되니 무너질 수도, 퇴보할 수도 없는 구조다.

개방 통로·시장 교육장, 지원해야

장마당의 진짜 가치는 개방의 통로이면서 ‘시장’의 산 교육장이라는 사실이다. 이곳의 공급 루트로 바깥 세계 문화까지 빠르게 유입될 것이다. 평양에는 이제 주택 임대도 활성화된다고 한다. 향후 대북 정책도 장마당의 활성화 유도와 직간접적인 지원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기껏 퍼주기 논란을 또 유발할 이유가 없다.

북한이 바닥에서 변할 때라야 대화도 협상도 가능해진다. 문화대혁명 후 복귀한 덩샤오핑이 자유주의경제학의 대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초청해 들은 개혁 해법이 “농민들에게 자기 수확물 처분권을 주라”는 한마디였다. ‘시장의 도입’이었다. 개성공단 재개나 스포츠 교류 제안 같은 ‘구걸 평화’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장마당 육성 프로젝트’가 더 현실적이다. 국제적 지원 방안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