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 해외 27곳 '거미줄 네트워크'…"신흥국선 노무라보다 유명"
“펀드 가입 1년 만에 원금의 40%를 잃었다. 내 돈 물어내라.”

2000년 12월30일 서울 여의도 굿모닝신한증권(현 신한금융투자) 지하 2층 대강당. 폐쇄형 펀드인 ‘박현주 펀드 2호’ 청산을 결의하기 위해 마련된 주주총회는 투자자 300여 명의 항의로 아수라장이 됐다. 연단에 선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당시 미래에셋투자자문 대표)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란 말을 반복했다.

박 회장은 이날을 ‘평생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한다. 그는 “투자 대상을 국내 상장 주식으로 한정한 탓에 시장 상황이 나빠지자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며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률을 내려면 해외로, 여러 투자 자산으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날”이라고 했다.

◆2년간 50% 수익 낸 첫 해외펀드

박 회장은 절치부심했다. 해외시장을 공부했고, 채권 부동산 등 주식 외에 다른 투자 자산을 파고들었다. 2005년 2월 선보인 ‘미래에셋아시아퍼시픽스타’는 박 회장이 4년 넘게 공부한 결과물이었다.

‘국내 운용사가 내놓은 첫 해외펀드’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펀드는 순항했다. 첫 2년 누적수익률이 50%에 달했다. 자신감이 붙은 박 회장의 머릿속은 ‘글로벌’로 가득찼다.

‘국내 투자자의 자금을 해외 유망 주식과 채권에 분산 투자하면 수익성과 안정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2006년 ‘인사이트펀드’란 이름으로 출시됐다. 잘나가던 인사이트펀드가 고꾸라진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부터였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인사이트펀드 수익률이 ‘박살’났다. 박 회장은 다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의 실패는 박 회장과 미래에셋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미래에셋은 해외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 채권 등으로 투자 자산을 넓히며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내는 물론 해외 투자자도 미래에셋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전체 운용자산(117조238억원) 중 13%(15조3145억원)는 해외 투자자가 맡긴 돈이다. 운용자산의 37%(43조2988억원)는 해외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금융상품을 해외 투자자에게 판매한다는 점에서 미래에셋은 수출기업”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아시아 대표 IB로 성장

미래에셋금융그룹은 미국 캐나다 브라질 호주 룩셈부르크 등 세계 15개국에 27개 법인과 사무소를 둔 글로벌 투자회사다. 2003년 설립한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을 시작으로 매년 ‘해외 영토’를 넓혔다. 1조6434억원을 굴리는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은 현재 인도의 유일한 독립 외국 자본운용사로 활약하고 있다.

현지 금융회사 인수합병(M&A)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2011년 1400억원에 인수한 캐나다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인 ‘호라이즌 ETFs’가 대표적이다. 대다수 임원은 “적자 회사를 왜 인수하냐”며 반대했지만, 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앞으로 ETF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큰 만큼 M&A를 통해 역량을 빨리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이 회사의 ETF 순자산은 인수 당시 3조6919억원에서 지난달 말 6조1158억원으로 65.5% 늘었고, 기업 가치는 두 배 이상 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 미래에셋은 해외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한 외국계 자산운용사 대표는 “브라질 중국 등 신흥국에서는 미래에셋의 명성이 아시아 최대 투자은행(IB)인 일본 노무라금융투자보다 높다”며 “미래에셋은 글로벌 기관투자가가 굵직한 투자 건을 들고 한국에 올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됐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난 12년 동안 쌓은 해외 투자 경험을 토대로 주식 채권 부동산을 넘어 해외 기업 투자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주요 투자 대상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이 될 전망이다.

박 회장은 “향후 금융 경쟁력이 AI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과 얼마나 잘 융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미래에셋의 경쟁자는 국내 증권사가 아니라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라며 “글로벌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 금융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김우섭/이지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