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9급 공무원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해 차관까지 한 입지전적 인물 중 한 명이 이기우 인천재능대 총장이다. 1967년 부산에서 고교를 졸업한 그는 우체국 서기보(9급)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뒤 거의 40년 만인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에 올랐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데다 관운(官運)도 남달랐다고 주변에선 얘기한다.

이 총장은 말단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9급으로 출발한 건 아니다. 그때는 9급 직제가 없었다. 공무원 직급 체계가 지금과 같이 바뀐 건 전두환 대통령 시절인 1981년이다. 일반 공무원 직급을 1급 및 2~5급 갑(甲)·을(乙)로 나눴던 것을 폐지하고 1~9급 체계로 변경했다. 3급 을 직급은 5급으로, 4급 을은 7급, 5급 갑은 8급, 5급 을은 9급으로 바꿨다.

서기보로 불리는 9급 공무원은 국가 및 지방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 가운데 가장 아래 직급이다. 국가직 9급은 중앙부처와 소속기관에서, 지방직 9급은 지방자치단체 시·구, 사업소, 읍·면·동 주민센터 등에 배치된다. 초임은 군대를 마친 남성 기준으로 연봉 2500만~2700만원 수준이다. 과거엔 고교 졸업 무렵 가정형편 때문에 진학 대신 취업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지원했다. 가난하지만 똑똑한 고졸 9급 공무원 중 일부가 나중에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신화를 쓴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지금처럼 대학 졸업자가 대거 응시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1990년대 이후다. 처음엔 국가직 9급 가운데 세무, 관세, 교정, 검찰사무 등 소위 힘이 있거나 퇴직 후 생활에 도움이 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대졸 지원자가 몰렸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9급 공채 전 분야에 응시자가 크게 늘었다. 대기업과 금융회사 등의 좋은 일자리 취업이 어려워지다 보니 실리를 찾아 9급 공무원 시험으로 눈을 돌리는 대졸자가 크게 증가했다. 요즘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가 지난 17일 2017년도 9급 지방공무원 채용시험을 치른 데 이어 서울시는 24일 시험을 본다. 16개 시·도에서는 1만315명을 뽑는 데 22만501명이, 서울시엔 1514명 채용에 12만4954명이 지원했다. 전체적으로 30만 명 넘게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는데도 ‘공시족’은 계속 늘어나는 모양새다. 사회적으로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돼 가고 있다.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