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막장 인연'에 스릴러가 꿈틀
미술평론가이자 소설가, 사회비평가였던 존 버거(1926~2017)는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에서 “오랜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직감이었다”고 했다. ‘무언가가 말해질 필요’가 있어 글을 쓰는 것은 작가들의 공통된 바람이기도 하다. 통속적 서사로 유명한 작가들은 ‘무엇이 말해질 필요’가 있어 자극적인 설정과 표현을 반복하며 대중에게 빠르게 다가서는 것일까.

MBC 주말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사진)는 통속적인 막장으로 포문을 연다. 톱스타 유지나(엄정화 분)는 우연히 자신의 모창가수 정해당(장희진 분)과 인연을 맺는다. 홀로 된 아버지를 돌보고 세 여동생을 대학까지 보내느라 변두리 카바레를 전전해온 해당에게 지나는 구름 위의 존재다. “허락도 받지 않고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해당에게 “누가 누구 인생에 폐를 끼치나. 다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 받아들이고 열심히 사는 거지”라며 배려심 깊은 인생 선배로 다가선 지나는 단 두 회 만에 변모한다.

“나 아무래도 저 남자랑 한번 살아봐야겠어. 저 남자 나 줘요”라며 해당의 연인 조성택(재희 분)을 빼앗다시피 한 지나는 며칠 후 그를 사고로 잃는다. 우정을 나눌 유일한 친구 해당마저 잃은 지나. 허한 마음을 재벌 회장 박성환(전광렬 분)의 구애에 ‘밀당’을 하는 것으로 다스리지만 어린 아들을 버린 죄책감은 더 깊어진다. 해당 역시 연인의 허망한 죽음과 “남이 피땀으로 만든 히트곡을 허락 없이 사용한 빚 갚은 셈 치라”던 지나의 독설을 삭이며 살아간다.

첫회부터 통속적이고 막장스럽게 전개된 줄거리는 4회에 이르러 본격화된다. 해당이 의지하는 동네 카페 사장 이경수(강태오 분)는 지나가 어린 시절 버린 시각장애인 아들이다. 어머니를 자살에 이르게 한 아버지 박 회장에게 대항하기 위해 지나와 계약하려던 박현준은 꿋꿋하게 살아가는 해당과 정 많은 해당의 부친 정강식(강남길 분)에게 반했다.

지나와 해당의 대면은 초반 이후 줄었지만 그들도 모르는 사이 각자의 관계망이 얼기설기 엮여 들어간다. 8회에서는 지나가 박 회장의 아들 현식에게 호감을 보이면서 또 다른 막장 관계를 암시했다. 이기적인 스타와 이타적인 모창 가수는 재벌가의 음모와 소시민의 눈물을 스릴러와 가족극으로 오가게 하는 상징적 존재다. 갈등의 중심에 있는 이는 각막 수술을 받고 시력을 되찾은 이경수. 그가 박 회장의 자살한 부인에게 받은 비밀 편지는 본격화될 스릴러 장르의 서막이다.

극의 전반을 지배하는 것은 주인공들이 가진 이별의 트라우마다. 이들이 겪은 이별은 준비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별을 납득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한마디의 울음을 꿀꺽 삼키듯”이 억지로 삼킨 이별을 조금씩 토해내며 소화하려 한다.

그러나 그런 노력조차 허망하게 그들을 고통에 빠뜨린 주체인 지나와 박 회장은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의 사과로 공분을 산다. “세상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전해야 할 말이 미안하단 말”이라는 해당의 대사는 이 시대의 절규이기도 하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국문학과 강사인 해당의 여동생 해진을 통해 “문학작품은 사회적 현상의 하나”라고 설명한다. “사회적 갈등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행동 방식과 사유의 방식을 통해 대중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문학이고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통속적인 대사와 막장스러운 구도는 이 점을 빠르게 각인시키기 위한 것일지 모른다.

급작스러운 이별을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던 우리가 수년의 고통을 지나 실체와 직면하려는 요즘. 다가올 공분과 고통의 순간에 대처하기 위해 ‘무언가 말해질 필요가 있어서’ 작가는 가족극에 스릴러를 가미한 것은 아닐까? 이 드라마의 숨은 미덕은 시대 흐름에 대한 비유에 있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