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극물 범행 후 바로 손씻고 호텔 옮겨다녀…"공작원 같은 행동"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18일 북한 여권을 소지 남성이 체포되면서 이 남성과 앞서 체포된 2명의 여성 용의자들간의 관계에 관심이 쏠린다.

체포된 여성 용의자 2명은 이 남성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에게 속아서 장난으로 알고 범행에 가담했다고 주장하지만 행적은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범행 전후로 치밀한 면모를 보인 이들이 정말 사기당한 피해자인지, 살인 청부업자인지, 김정남의 존재를 알고 살해한 암살범인지 등을 놓고 추측이 무성하다.

말레이시아 현지 매체 더스타 온라인에 따르면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체포된 여성 2명은 지난 1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2청사에서 이뤄진 현장 검증에서 범행 상황을 재연하고 설명했다.

용의자인 베트남 여권 소지자 도안 티 흐엉(29)과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25)는 치명적인 액체로 모르는 사람인 김정남의 얼굴을 덮치고, 이후 근처 화장실로 재빨리 뛰어가 손을 씻고서 현장을 떠났다고 주장했다.

범행 후 신속하게 손을 씻는 모습은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로, 치밀한 교육을 받은 공작원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교육받은' 면모로 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 검증에서 두 용의자가 당시 장갑을 착용하거나 헝겊을 사용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항 폐쇄회로(CC)TV에는 'LOL'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흐엉이 왼손에 짙은 색 장갑을 낀 채 택시 승차장으로 힘차게 걸어가는 모습이 찍혔다고 말레이시아 일간 뉴스트레이츠타임스는 전했다.

신문은 그가 택시 승차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로 향하는 모습을 담은 CCTV 화면이 범죄 현장에서 도주하려는 초조한 상태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흐엉이 택시에 도착했을 때 장갑은 사라진 채였다.

말레이시아 중문 매체 중국보는 아이샤가 손수건으로 김정남의 얼굴을 덮고 흐엉이 독극물을 뿌렸다고 전했으나, 성주일보는 두 사람 역할을 바꿔 보도하는 등 역할 분담을 놓고는 현지 보도가 엇갈리고 있다.

두 사람은 경찰에 일단 자신들은 '장난'으로 알고 범행에 가담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부통령까지 나서 자국 용의자가 사기나 조작에 휘말린 피해자일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의 이들의 행동 외에도 이들을 단순히 피해자로 보기엔 미심쩍은 정황이 많다.

특히 베트남 국적의 흐엉은 경찰에 붙잡히기 전 호텔 세 군데를 옮겨 다니며 숙박하는 등 수상한 행적을 보였다.

홍콩 동망(on.cc) 등의 보도를 보면 소식통들은 흐엉이 쿠알라룸푸르에서 호텔을 옮겨다니고 몸에 거액의 현금을 지니고 있었으며 사건 하루 전 스스로 머리를 자르는 등 공작원 같은 행세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흐엉은 지난 11일 2성급 호텔인 '클래식 호텔'의 가장 싼 창문 없는 방에 투숙했다.

호텔 여직원의 기억으로는 흐엉은 잠깐 묵을 계획이라며 현금을 꺼내 요금을 지불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고서 흐엉은 '시티뷰 호텔'에 체크인했다.

이 호텔 직원은 '도안 티 흐엉'이라는 이름의 베트남 여성이 당시 배낭을 메고 여행 가방과 대형 곰 인형을 들고 투숙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흐엉은 당일 저녁 호텔 프런트에서 가위를 빌려 갔는데 청소원은 다음 날 아침 방바닥과 쓰레기통에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호텔 종업원은 사건 당일인 13일 아침 일찍 흐엉이 호텔을 나섰으며 호텔에 돌아왔을 때 얼굴에는 분노나 걱정의 표정은 없었고 쾌활해 보였다고 전했다.

흐엉은 이후 호텔 프론트에 방안의 와이파이가 문제가 있다고 항의한 뒤 인근 '스카이스타 호텔'로 숙소를 또 옮겼다.

이 호텔들은 모두 공항에서 8㎞ 정도 떨어진 세팡 지역의 한적한 동네에 있다.

현지의 한 사설탐정은 "흐엉의 행동이 공작원처럼 보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말하겠다"며 "통상 공작원들은 변장하고, 현금으로 지불하며 CCTV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고 사방으로 옮겨 다닌다"고 주장했다.

흐엉이 범행 이틀 후 현장에 다시 나타나고 암살이 '장난'인줄 알았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등 어설픈 행동을 보인 것도 주도면밀한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동망에 따르면 경찰은 아직 김정남에게 뿌린 독액과 흉기 등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경찰은 조사 후 두 여성이 속아서 암살에 참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하이·서울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김아람 기자 ri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