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아베, '강경입장 취해라' 관료 조언 안 따른 듯"
사전 의제 교환 없어…외교 관례 안 따른 '파격' 회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회동은 민감한 현안 논의보다는 신뢰 관계 구축을 위한 자리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17일(현지시간) 90분간 회담 후 페이스북에 아베 총리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올리고 "아베 신조 총리가 내 집을 찾아 위대한 우정을 시작하게 돼서 즐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베 총리도 "두 사람이 느긋하고 차분하게 흉금을 터놓고 솔직히 이야기했다"며 이번 회동이 트럼프 당선인과 맺는 신뢰 관계의 시작임을 강조했다.

당초 미국 언론 등은 이번 만남이 트럼프 당선인의 대아시아 정책을 가늠할 기회일 것으로 예상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기간 한일 핵무장 허용, 미군 철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반대 등 아시아 동맹국을 긴장시킬 공약을 언급해온 만큼 이번 만남에서 어떤 스탠스를 보여줄지가 이들 공약을 수정할지 아니면 유지할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미국 매체 포린폴리시는 트럼프의 일부 측근들이 워싱턴 주재 아시아 대사관에 미국이 아시아내 미군 전진 배치를 재검토하고, 아시아보다는 미국 내 테러나 경제문제에 집중해야할 수도 있다고 말해왔다며, 이번 만남이 '첫 아시아 시험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날 구체적인 회담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당선인과 아베 총리가 무거운 현안 논의는 피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당선인과 아베 총리 양측이 회담을 앞두고 정식 회담에서 하는 의제 교환을 하지 않았으며, 이번 만남은 두 지도자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기회였다고 일본 관리를 인용해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일본의 외무·통상 관료들은 이번 만남을 앞두고 아베 총리에게 TPP나 군사동맹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라고 조언했으나 아베 총리가 이 조언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석좌를 인용해 전했다.

아베 총리가 민감한 현안보다는 트럼프 당선인과 개인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길 원했다는 것이다.

일부 일본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가 지난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만 면담한 것을 수습하고 싶어할 수 있다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린 석좌는 NYT에 "아베 총리는 나렌드라 모디 일본 총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같은 '스트롱맨' 리더들과 잘 지내왔다"고 트럼프와의 원만한 관계를 예상하며 "문제는 트럼프가 향후 아시아와 관련해 실제로 어떤 정책을 펼지 일본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프리 킹스턴 미국 템플대 일본캠퍼스 교수는 CNN에 "아베는 미국과의 동맹 강화를 위해 상당한 자본을 투자해왔다"며 "트럼프 당선인과의 만남을 통해 아베 총리는 세계에 미국과 일본이 여전히 함께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언론도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을 향해 '믿을 수 있는 지도자'라며 개인적 신뢰를 표시한 부분에 주목해 이번 회동을 보도했다.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회동이 아베 총리에게는 외교에 주도적으로 나서는 모습, 각국 정상들과의 개인적 관계를 중시하는 신념을 천명하는 성과가 됐다고 평가했다.

일간 가디언 역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트럼프 당선과 관련해 향후 안보와 무역 우려가 커진 가운데 일본이 이번 회동으로 "안도의 한숨을 조심스럽게 내쉴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회담이 그간 미국 정부의 외교 관례를 따르지 않은 '파격적인' 정상회담이었다는 점에도 미국 언론은 주목했다.

NYT는 트럼프가 당선 이후 외국 정상과 32차례에 걸쳐 전화 통화를 했으나, 그 중 단 한 차례도 국무부의 관례나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아베와의 만남을 앞두고도 트럼프 당선인은 국무부 브리핑도 듣지 않았고, 통역사가 필요한지, 아니면 자체 통역을 쓸지에 대한 국무부의 질문에도 트럼프 측이 답변하지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이날 회동은 지난 10일 아베 총리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당선 축하전화를 걸었다가 만남을 제안했고 이를 트럼프가 받아들여 성사된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 앞서 트럼프 캠프 선대본부장을 지낸 켈리엔 콘웨이는 CBS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회동의 성격은 "덜 격식적"(less formal)이라면서 "(이날 만남에서는) 외교적인 합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콘웨이는 "정책이나 미·일 관계 등과 관련한 깊은 대화는 취임 이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ri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