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완의 데스크 시각] 레이거노믹스와 트럼피즘
지난 2월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창립자이자 아시아연구센터 회장이 한국경제신문사를 방문했다. 작년에 한경과 재단이 공동으로 ‘경제 자유와 미국 경제의 회복’이란 주제의 포럼을 연 것을 계기로 향후 협력 등을 강화해 나가자는 취지에서였다.

당시 국제부장으로서 “올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를 어떻게 예측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은 약점이 많아 대통령이 되기 어렵고, 도널드 트럼프는 흥미로운 사람이지만 본선까진 못 갈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의 당선은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관여하고 있는 퓰너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트럼프의 승리에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그리고 디지털화 물결에서 소외된 저학력 블루칼라 백인들의 지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트럼프는 민주당의 텃밭이던 미시간, 위스콘신 등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에서 클린턴을 눌렀다. 무역협정을 되돌려 다른 나라에 뺏긴 일자리를 되찾아 주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이 먹힌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같은 반(反)무역협정정책이 승부를 결정지었다고 분석했다. 실제 선거 당일 출구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자 가운데 57%는 무역이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답했다.

‘강한 미국’을 내세운 트럼프가 당선되자 많은 사람이 레이건시대를 거론한다. 작은 정부, 규제완화, 감세, 자유무역 확대 등을 특징으로 하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1980년대 레이건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이런 점에서 자유무역 경쟁에서 밀려난 미국 블루칼라들이 레이건 향수를 자극한 트럼프 편에 섰다는 건 아이러니다. 물론 이는 트럼프가 레이거노믹스(레이건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서 벗어난 보호무역정책 공약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의 반(反)이민정책도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한편에선 상·하원을 차지한 공화당 주류가 자유무역을 지지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중국산 제품에 45% 관세를 매기는 등 무역장벽을 높이진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미국의 통상정책은 대통령 뜻대로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여파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트럼프 당선 사흘 만에 세계 최대 무역협정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비준 추진을 포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엔 비상이 걸렸다. 기업과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불확실성’도 커졌다.

그런데 보호무역을 하면 미국 블루칼라들이 예전 좋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을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미국 제조업 일자리 감소가 자동화 때문이지 자유무역 확대 때문이 아니라고 진단한다. 미국 제조업의 부활도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첨단기술 산업 분야가 뒷받침하고 있다. 보호무역으로 교역이 줄면 ‘교과서적으로’ 얘기해 효율적 자원 배분이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도 물가가 높아져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이 더 팍팍해질 수 있다. 미국인들이 그동안 물가 걱정 없이 소비 향락을 누려온 것은 값싼 중국산, 멕시코산 제품 덕분이다. 감세한다고 애플이 아이폰을 미국에서 조립하진 않을 것이다. 포퓰리즘 기반의 ‘트럼피즘(Trumpism)’으로 대통령이 되는 데 성공한 트럼프가 시간이 지나 레이건처럼 기억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박성완 생활경제부장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