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라인과 1억유로 펀드 출범…스타급 첨단 벤처 육성

"한국과 프랑스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어 행복해요"

생후 수개월만에 프랑스로 입양됐지만 훌륭하게 성장해 디지털 경제부 장관까지 지낸 후 벤처 사업가로 변신한 플뢰르 펠르랭(한국명 김종숙) 코렐리아 캐피탈 대표는 30일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가 그가 올해 창립한 코렐리아 캐피탈의 펀드 출범을 알리는 자리였다.

프랑스판 '창조경제' 전문가인 그는 인터넷 생태계의 건강을 위해 유럽·아시아에서 '스타급' 첨단기술 벤처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글 등 소수 미국계 업체가 인터넷을 소유주처럼 장악하는 문제가 심각하다.

인터넷의 개방성과 균등한 기회를 지키려면 새로운 주체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코렐리아는 최근 한국의 대표 IT(정보기술) 업체인 네이버·라인과 함께 1억 유로(약 1천239억원)의 'K-펀드 1'을 조성해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분야의 유럽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우수 창업자를 키우기로 했다.

비(非) 미국계의 IT '대항마'를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네이버·라인은 유럽 우량 스타트업과 협업하며 현지 진출 방안을 찾고, 한국·유럽 벤처업계의 교류를 대폭 늘려 양측의 동반 성장 기회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현재 유럽은 구글과 페이스북 등 미국 기업에 인터넷 시장을 완전히 내줬고 IT 창업이나 벤처 투자가 크게 위축됐다.

세계 최대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스웨덴)와 유명 동영상 사이트인 데일리모션(프랑스) 등이 겨우 '체면치레'를 해주는 정도다.

벤처 전문가인 펠르랭 대표는 프랑스 디지털 경제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13년 이런 상황을 바꾸고자 첨단기술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대규모 프로그램인 '프렌치 테크'를 출범시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는 유럽에서 검색 점유율이 90%가 넘는 구글이 유럽 당국과 개인정보 침해 등 문제로 갈등을 빚는 사실을 언급하며 "거대 IT 기업도 현지 법을 지켜야 하며 온라인에서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음은 펠르랭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네이버·라인 외에 다른 글로벌 IT 기업과 파트너십을 한 적이 있나
▲ 현재는 네이버·라인이 유일한 파트너다.

단기 이익이 목표가 아니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최소 하나 이상의 '유니콘'(시가총액 10억 달러 이상의 거물 스타트업)을 키우자는 구상을 하고 있다.

유럽 스타트업이 한국 등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데 네이버·라인과의 파트너십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아시아 시장은 언어 장벽 등 어려움이 적잖지만, 얼마든지 성공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는 지금처럼 소수 (미국계) 업체가 인터넷을 소유주처럼 장악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업계 주자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 경쟁이 일어난다.

--구글과 각국 정부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구글의 지도 반출 논란이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견해는
▲ 유럽에서도 구글과 관련해 '데이터 주권'이나 개인정보 보호를 둘러싼 우려가 크다.

세금을 걷어 자국 시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다국적 IT 대기업이 특정 국가에서 사람을 고용하고 현지 인프라 등 혜택을 누리고 가치를 창출한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을 지키고 국가에 세금을 제대로 내야 한다.

--K-펀드 1과 관련해 네이버·라인과는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 일상적 협력 관계다.

우리 투자 포트폴리오 내의 스타트업들이 네이버·라인의 성공 사례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

유럽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시장을 배울 수 있도록 네이버·라인이 도와주는 것이다.

또 스타트업이 네이버·라인에게 코치를 받으면서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익 관계가 아니라 지식을 공유하고 성장하는 사이가 되는 셈이다.

(그런 협업은 한국에서 이뤄지나) 네이버도 벤처 육성 프로그램인 D2 스타트업 팩토리를 갖고 있다.

이런 인프라를 이용하고자 서울에 팀이 올 수도 있게 선택권을 줄 생각이다.

특정 공간에 얽매이진 않는 구조다.

--네이버·라인을 어떻게 알게 됐나
▲ 프랑스 장관 재직 시절 이해진 의장 등 네이버 사람들과 인터넷이나 디지털 혁명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사업적 논의는 아니었고 철학적 대화에 가까웠는데, 디지털 혁신에 대한 생각이 서로 같다는 것 알게 됐다.

이후 코렐리아를 창립하고 유럽·아시아의 국경을 초월하는 펀드를 만들 때 네이버가 좋은 파트너가 될 것으로 봤다.

개인적으로 이번 일은 감동적 순간이다.

태어난 나라인 한국과 자라난 나라인 프랑스 사이에서 스타트업 교류의 가교 구실을 할 수 있어 기쁘다.

내 인생의 균형을 찾는 출발점이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디지털 경제의 주도권을 어느 나라가 잡는지를 두고 유럽에서 관심이 많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는가
▲ 2000년 당시 유럽에서는 모바일폰 제조사가 5곳 있었는데 10년 뒤에는 모두 사라졌다.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혁명을 거치면서 유럽은 사실 주도권을 놓쳤다.

이제 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 새 혁명의 시기인데 그나마 상황이 열려 있다.

현명한 투자와 인재 등이 관건이다.

그런데 이럴 때 소수가 인터넷을 장악하는 것은 세계 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좋지 않다.

즉 밸류 체인(가치창출 과정)에서 1∼2개 회사만 있는 건 나쁘다는 얘기다.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이미 훌륭한 생태계가 있다.

성공한 기업가가 벤처캐피털리스트나 엔젤 투자자(개인 투자자)가 되는 구조다.

이런 투자자가 사업 모델을 잘 알고 현명하게 투자한다.

또 창업자들을 자극해 더 좋은 사업 모델을 구현하게 이끈다.

이처럼 '성공 스토리'를 어떻게 만드는지를 아는 이들이 필요하다.

유럽에서 첨단 벤처와 관련해 성공 스토리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런 게 너무 없다.

그래서 프랑스 등의 스타트업이 네이버·라인의 경험과 지식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국제적인 개척자(프런티어)가 필요하다.

--현재 방한 중인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날 계획이 있는가
▲ 지금은 계획이 없다.

네이버·라인과의 협업에 집중하려 한다.

향후에 만날 기회가 있다면 마다하진 않을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t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