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못 참아 묻지마 폭행과 살인이 일어난다.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 관료, 경제인 대부분이 화를 억누르는 심각한 표정이다. 정부 정책 브리핑 사이트에 ‘분노의 사회, 해법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의 칼럼도 실린다. ‘정의로운 분노의 중요성’을 다룬 책까지 나올 정도다. 지금 우리는 분노가 일상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
시대 정서는 사회 구성원을 묶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그 시대 정서가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애국심,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 사회적 관용을 중시하는 톨레랑스가 아니라 ‘분노’라고 한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21일 건설이 백지화된 영남권 신공항 논쟁에서도 분노가 쉽게 동원됐다. 내 동네에 공항을 부탁한다는 핌피(PIMFY) 현상을 넘어 시대 정서를 가장한 정치적 선전의 장이 됐다. 지역에 기반을 둔 이해당사자들이 분노라는 감정을 집단적으로 동원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최선두에 여야 정치인들이 서 있다.
정치가 통치의 근간이 되는 이유는 멀리 있지 않다. 시대 정서를 이해하되 휩쓸리지 않고 그것이 나라를 움직이는 힘이 되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조율하고 결집하는 능력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힘들을 묶어 시스템화한 것이 통치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는 시대 정서를 통치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힘이 조악하다. 더군다나 분노와 더불어 불안과 무기력이 가득한 시대 정서를 이기적인 정치적 선전 동력화하는 시도까지 있다. 정치에서는 마음을 읽고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독일 메르켈 총리의 평전을 쓴 작가는 정치 리더로서 메르켈을 평가하면서 “주목과 동의를 얻으려는 싸움에서는 사실이 아니라 인식이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낡고 오래된 정치로는 지금의 시대 정서를 올바로 이끌 수 없다. 역수행주 부진즉퇴(逆水行舟 不進則退)라고 했다. 흐르는 강물 위에 떠 있는 대한민국, 전진하지 못하면 바로 후퇴다. 현재의 정치 시스템은 수명을 다했다.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도 이 정치 시스템에 들어오는 순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머뭇거리지 말고 정치 시스템을 뜯어고치자.
김용태 < 새누리당 국회의원 ytn@na.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