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가 띄우기' 논란 휩싸인 ING생명
국내 5위 생명보험사인 ING생명이 지난해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하는 ‘회계상 편법’을 동원해 자본량을 크게 증가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ING생명의 주인인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가 회사 매각가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같은 회계를 조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갑자기 늘어난 자본

2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ING생명은 지난해 보유하고 있던 만기보유증권 5조850억원어치를 매도가능증권으로 회계상 재분류했다. 이는 만기까지 보유할 의도를 가지고 있던 장기채권 등을 차익 실현을 위해 언제든 팔 수 있도록 채권 보유 목적을 전환했다는 의미다. 이 덕에 ING생명은 지난해 1조5333억원의 기타포괄이익금이 발생, 회계상 자본량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만기보유증권과 달리 매도가능증권은 금리 변동에 따라 바뀌는 채권 평가액을 곧바로 손익으로 인식한다.
'매각가 띄우기' 논란 휩싸인 ING생명
MBK파트너스가 ING생명을 인수한 2013년 당시 2조1874억원이던 회사 자본 규모가 지난해 말 4조2608억원까지 늘어난 것도 회계 분류 변경에 따른 효과다. ING생명은 지난해 자본량이 급증하면서 지급여력비율(RBC) 등 자본으로 계산되는 각종 건전성 지표가 개선됐다.

○장기 건전성 얼마나 훼손되나

이처럼 ING생명의 단기 경영지표는 좋아졌지만 이번 ‘회계 편법’이 회사의 장기 건전성을 훼손했다는 시각이 많다.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했을 때 나타나는 각종 부작용 때문이다. 우선 금리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ING생명의 재무변동성이 커지게 됐다. 매도가능증권으로 분류한 채권은 금리가 상승하면 하락한 채권가격이 곧바로 회계상 손실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 보험사 회계담당자는 “보험사가 아무리 영업을 잘해도 금리 상승으로 대규모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장기적으로 보유자산 수익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만기보유증권과 달리 매도가능증권은 이익 실현 필요성이 생기면 언제든 처분이 가능하다. 우량 장기채권을 처분하면 단기 실적은 개선되지만 만기까지 보유할 때보다 결과적으로 수익률은 떨어지게 된다. 한화생명도 지난해 ING생명과 같은 방식을 통해 당기순이익을 높였다가 업계에 논란을 야기한 적이 있다. 우량 장기채권 처분에 나설 경우 자산 듀레이션이 줄어드는 점도 부담이다.

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는 새로운 국제회계기준인 IFRS4 2단계와 IFRS9이 2020년 도입되면 재무변동성과 부채 듀레이션이 커진다. 보험사들은 변동성 리스크를 줄이면서 늘어나는 부채 듀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자산 듀레이션을 늘려야 한다. IB업계는 MBK파트너스가 회계상 자본 확대, 건전성 지표 개선, 당기순이익 증가 등의 단기 실적을 통해 매각가 띄우기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매각 협상에도 부정적인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ING생명 매각 예비입찰에 참여한 교보생명의 고위 관계자는 “냉정하게 회사 가치를 분석했을 때 2조원 이상은 무리”라고 말했다. 중국 안방보험 측도 “2조원 안팎이 적정 인수가”라는 견해다.

이에 ING생명 측은 채권 재분류는 자산 유동성 확보를 통해 새 회계기준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ING생명 관계자는 “만기가 다가오는 채권을 처분한 뒤 장기채권에 투자해 오히려 자산 듀레이션을 늘리기 위해 채권 재분류를 한 것”이라며 “당기 실적 개선을 위해 우량 장기 채권을 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각가 띄우기 논란에 대해서도 “회계상 자본 증가가 보험사의 실질적인 가치와 관련이 없다는 건 모든 회계 전문가가 아는 사실”이라며 “매각가를 높이려는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지훈/김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