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변호사 대체하는 AI…기업 자문비 절감
법률시장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정보기술(IT)이 잇따라 도입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간단한 법률 자문은 변호사를 통하지 않고도 인터넷 등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법률시장의 디지털화 움직임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법률 자문 수수료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법률서비스 수수료와 고객의 지급능력 간 격차가 커지면서 법률시장에도 ‘우버화’가 무르익고 있다”고 12일 보도했다. ‘우버화(Uberization)’는 차량과 승객을 바로 연결해주는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Uber)에서 나온 신조어로, 소비자와 공급자를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직접 연결해주는 공유경제 시스템을 일컫는다.

◆법률 서비스에 도입되는 AI

비싼 변호사 대체하는 AI…기업 자문비 절감
법률시장은 그동안 다른 분야보다 AI나 IT를 접목하기 힘든 영역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법조계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 이런 통념을 깨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팰로앨토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인 로스인텔리전스가 대표적이다. 로스는 IBM의 인공지능 기술 ‘왓슨’을 활용해 대화형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니어 변호사가 상당 시간을 쏟아야 하던 판례 등의 검색·분석 작업에 왓슨을 활용한다. 왓슨은 2011년 TV 퀴즈쇼 ‘제퍼디’에서 역대 챔피언을 물리치며 능력을 입증했고, 헬스케어 등 다방면에 활용되고 있다.

로스 관계자는 “인간 변호사라면 컴퓨터 키워드 검색으로 수천개의 문서를 스크롤해야 하지만 왓슨은 문서를 샅샅이 뒤져 기업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법률서비스업체 액시엄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곳곳에 있는 변호사를 연결, 저렴하게 법률 자문을 제공한다. 영국의 리버뷰로는 사내 법률부서가 좀 더 효율적으로 작업을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한 ‘가상 비서’ 서비스를 내놨다.

이런 서비스가 속속 도입되는 이유는 영국과 미국에서 치솟고 있는 법률 자문 수수료 때문이다. 비싼 택시비에서 사업 기회를 찾은 우버처럼 기술로 그 간극을 메워보겠다는 것이다. 싱크탱크 ‘센터포 폴리시 스터디즈’ 보고서는 1980년대 중반 영국 런던 로펌의 파트너들이 시간당 150~175파운드(약 24만~28만원)의 수임료를 받았으나 지난해에는 775~850파운드(약 126만~138만원)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올해는 1000파운드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법률시장의 ‘우버화’도 가속화

이런 추세에 따라 기업 고객은 로펌에 지급하는 법률 자문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영국 통신회사 보다폰은 법률자문하는 로펌 수를 70개에서 10개로 줄이고, 시간당 수임료 대신 고정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협상에 나섰다.

법조계에서는 법률시장의 우버화를 시기상조로 여기고 있다. 지금도 잘나가는 대형 로펌은 변화에 나설 이유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고 FT는 전했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의 법률 서비스 수요는 증가했다. 미국 로펌의 한 마케팅 대표는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법률시장은 ‘불타는 갑판(burning platform)’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변호사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일을 인공지능이 점점 대체하면서 이런 인식은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로즈메리 마틴 보다폰 법률고문은 “IT가 기업과 개인이 법률업무를 직접 수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 법률서비스 비용을 크게 낮출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크 해리스 액시엄 CEO는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 제작의 장인이었지만 오늘날 비행기는 장인이 아니라 에어버스, 보잉 등 기업이 대량생산한다”며 “아직 장인 단계인 법률시장 비용을 낮추는 방법은 변호사 업무의 대부분을 IT로 대규모 산업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