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이멜트 GE 회장과 미국 민주당 대통령선거 경선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간에 벌어진 최근 논쟁이 자못 흥미롭다. 100년이 넘은 미국의 대표적인 제조업체 회장과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의 공방은 무엇보다 논점이 분명하다. 포퓰리즘의 늪에 빠져드는 현대 대중정치와 경제발전을 이끄는 대표 기업의 자부심이 정면 충돌한 공방이었다. 우리 선거문화에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논쟁은 샌더스의 속 보이는 공격에서 비롯됐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작심한 듯 GE를 때렸다. ‘세금과 일자리를 해외로 빼돌리는 탐욕스런 기업’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 대기업들이 미국의 도덕 근간을 파괴하고 있다”는 막말도 했다. 승부처라는 뉴욕과 코네티컷 경선을 앞두고 코네티컷에 본사를 둔 GE를 향한 의도적 공격이라는 현지 분석도 있다. 유력한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의 후원자인 이멜트 때리기라고도 한다. 어쨌든 이런 식의 일방적인 기업 공격은 좌성향 정파에선 흔한 전략이다.

관심은 이멜트 회장의 반박이다. 그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를 통해 샌더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연방과 주 정부에 연간 수십억달러씩 세금을 냈고, 정치가들이 거짓 공약이나 내걸고 싸움질에 몰입할 때 진짜 부와 고용을 창출한 건 우리”라고 역설했다. “선거를 위한 공허한 약속이나 싸구려 공격은 쉽지만, 미국 내 12만5000개 일자리 유지를 위한 경영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서는 강한 자신감도 보인다. 샌더스의 정치노선을 겨냥해 “GE는 124년 동안 사회주의자들에겐 인기가 없었다”고 한 대목에선 통쾌함을 느낀 유권자도 많았을 것이다.

현대 정치가 타락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미국이기에 이런 공방이 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이멜트 회장 정도 되기에 이만큼 자기 주장을 당당히 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표만 바라보는 중우정치의 보복 가능성은 세계 어디서나 같다고 봐야 한다. 당내 경선의 지지층 결집 차원에서 국가적 간판기업을 탐욕집단으로 몰아칠 정도라면 집권 뒤엔 더한 공격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을 향한 정치인들의 비이성, 무차별적 공격은 국내에선 흔한 모습이다. 선거 때면 더욱 심해진다. 뜬금없이 삼성의 미래자동차 사업을 광주에 유치하겠다며 기업을 총선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것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설사 사실과 다른 내용 하나 해명하는 데도 살얼음 걷듯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그게 기업이 처한 현실이다.

사회적 먹이사슬의 최상위권을 장악한 정치권과 그를 대하는 기업은 ‘관계’와 ‘격’도 다른 게 우리 현주소다. 샌더스의 공격이 유치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다원성과 합리성이 ‘이멜트·샌더스 논쟁’에서 확인된다. 이멜트의 당연하고 당당한 반박이 부럽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