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부 진술 의존 16곳 '허탕 발굴' 경찰, 시신 유기 원점서 재수사

청주 안모(당시 4세)양 '물고문 사망 및 암매장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경찰 수사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2011년 12월 숨진 안양을 진천 백곡면의 야산에 버렸다는 계부 안씨의 진술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거짓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심리 상태를 조사한 프로파일러들은 그가 거짓말에 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주 청원경찰서는 지난 22일 안씨를 상대로 충북지방경찰청에서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벌여 이같은 결과를 얻었다.

이로 인해 그동안의 안씨 진술은 신뢰를 잃게 됐다.

이번 사건에서 확인된 사실은 크게 보면 '안양이 이미 사망했다'는 것 하나뿐이다.

지난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친모 한모(36)씨가 "죽일 의도는 없었는데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한씨가 남긴 메모를 통해 안양이 친모로부터 상습적으로 맞은 것과 계부 안씨로부터도 폭행을 당한 사실도 드러났다.

안양이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친모로부터 욕조에서 학대를 당해 숨진 뒤 부모에 의해 인근 진천 야산에 암매장됐다는 것이 이 사건의 개요였다.

한씨가 자살한 상황에서 전적으로 계부 안씨의 진술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안씨가 가리킨 야트막한 야산 하나를 다 파헤치고도 안양 시신을 찾지 못해 의심의 눈길을 보냈던 경찰은 더는 안씨를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비단 거짓말 탐지기 검사 때문만은 아니다.

거짓말 탐지 수사와 함께 진행된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조사에서도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충남·대전지방경찰청 소속을 포함해 3명의 프로파일러는 5시간가량의 조사 뒤 "거짓말과 임기응변이 능하다"는 소견을 내놨다.

"자기가 경험한 것은 생략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전했다.

이 때문에 경찰은 '유기 부분'은 원점에서 다시 수사하기로 했다.

경찰은 안씨가 "아이를 묻은 곳이 진천 야산이 맞다"고 우기지만, 암매장한 것이 사실인지부터 조사하기로 했다.

연장 선상에서 23일에는 해당 야산을 수색하지 않기로 했다.

굴착기 등 장비에 수색견까지 동원해 안씨가 지목한 16개 지점을 발굴하고도 시신을 찾지 못한 사실과 거짓말 탐지기·프로파일러 조사 결과를 조합할 때 안씨가 이 사건을 '시신 없는 시신 유기 사건'으로 몰고 가 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섣불렀던 관측이 점점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안씨의 '거짓말 행진'은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난 17일부터 시작됐다.

2014년 친모 한씨의 허위 입학의사 전달로 기록상 A초등학교에서 '정원 외 관리'되던 안양의 소재와 관련, 안씨는 당일 교사의 전화를 받고는 "아이가 외가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A초등교의 연락을 받은 동주민센터가 긴급 전산을 조회 연락처를 알아내 외가에 확인한 결과 거짓말로 판명됐다.

안씨는 A초등교의 이어진 추궁에 "평택의 보육원에 놓고 왔다"고 재차 둘렀댔고, 뭔가 석연치 않다고 판단한 동주민센터의 신고로 경찰에 임의동행되기에 이르렀다.

한씨의 유서로 안양이 숨졌다는 사실이 알려져 긴급체포된 이후에도 말을 자주 바꿨다.

딸이 숨진 첫날 유기했다고 최초 진술했다가 2∼3일간 아파트 베란다에 방치한 뒤 암매장했다고 번복했고, 유기 시점도 '12월 중순', '크리스마스(무렵)' 등 오락가락했다.

사실 경찰은 안씨가 엄동설한에 삽 하나로 만삭의 한씨와 함께 땅을 1·5m나 파 아이를 묻었다는 진술에도 의문을 달았었다.

그러나 안씨가 "인근 만뢰산에 묻으려다가 땅이 얼어 암매장 장소를 바꿨다"거나 "아내가 힘이 들어 Y자형으로 가지가 갈라진 나무에 기대 쉬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데다 발굴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이틀간 산 하나를 거의 헤집었다.

경찰은 진천 야산을 추가 수색할지 등을 논의 중이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한 안씨를 상대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게 경찰의 과제로 남았다.

경찰 관계자는 "안양의 시신을 찾으면 사건은 종결된다"고 말했다.

(청주연합뉴스) 박재천 기자 jc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