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진그룹을 재계 30위권으로 끌어올렸던 윤석금 회장이 회생절차와 법정싸움을 끝내고 그룹 재건에 시동을 걸면서 또다른 성공신화를 쓸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9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윤 회장은 박병엽 전(前) 팬택 부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 등과 함께 '자수성가형 최고경영자(CEO)'로 이름을 날렸다.

충남 공주 출신인 윤석금(71) 회장은 건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71년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 입사해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그는 입사 1년 만에 54개국 영업사원 가운데 판매 1위를 차지했고 9년 만에 사업국 상무 자리에 올랐다.

윤 회장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 대입 본고사를 전면 폐지하고 과외를 금지한다는 엄청난 뉴스를 접했다.

불현듯 머릿속에 아이디어를 떠올린 윤 회장은 교육청마다 전화를 걸어 과외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녹음해서 파는 것은 금지사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고 곧바로 전국 유명 강사들의 강의 내용을 녹음해 판매했다.

1980년 윤 회장이 브리태니커 한국지사를 나와 자본금 7천만원으로 시작한 웅진출판(현 웅진씽크빅)과 헤임인터내셔널은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판으로 웅진그룹의 모태로 성장했다.

윤 회장은 이후에도 '장사 수완'을 발휘했다.

1988년에는 웅진식품을 설립했고, 국민소득이 높아지자 '물 시장'에 고개를 돌려 1989년에는 정수기 회사인 웅진코웨이(현 코웨이)를 설립했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과 함께 코리아나화장품의 전신인 사랑스화장품을 창업하는 등 다양한 업종으로 사업을 넓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윤 회장의 도전적인 사업 확장도 시련을 맞았다.

신사업으로 시작한 태양광 사업이 부진했던데다 2007년 극동건설을 인수했지만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위기에 봉착했고, 경영부실에 따른 영업정지로 당국이 새 주인을 찾고 있던 서울저축은행을 인수한 것 역시 그룹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결국 웅진그룹은 2012년 극동건설과, 지주사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됐고, 알짜 계열사인 웅진코웨이와 웅진식품 등은 매각됐다.

윤 회장은 당시 회사의 신용도가 떨어질 것을 예상하면서도 1천억원대 기업어음(CP)를 발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우량계열사가 재정 위기에 빠진 극동건설과 웅진캐피탈을 불법 지원하도록 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았다.

1심은 배임·횡령액 일부를 유죄로 봤지만 사기성 CP 발행 혐의는 고의성이 없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서울고법은 윤 회장의 1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회장직을 이용해 우량계열사로 하여금 부실계열사나 실질적 개인회사에 거액을 지원하게 했다"고 지적했으나 "회생 절차를 마치고 재기 중인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것보다는 기업 경영을 통해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윤 회장이 계열사 지원에 앞서 사재 1천800억원을 출연했지만 회수하지 못했고 1심 후에도 피해 변제를 위해 노력한 점, 수사과정에서 개인비리가 발견되지 않는 등 비교적 투명경영을 한 점 등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재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윤석금 회장은 다시 정수기 사업과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그간 쌓아온 방문판매 노하우를 살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웅진이 1990년대 사세를 확장하면서 '문어발'이라는 비판을 잠재웠던 것은 화장품·출판·정수기 렌털 등이 견고한 방문판매 조직을 기반으로 한 사업이었기 때문"이라며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웅진은 업계가 주목할만한 조직력을 다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cind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