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남북 교류협력 마지막 통로 닫는 것…북한 핵포기해야 재가동"
정부가 남북 경제협력의 ‘최후 보루’로 꼽히는 개성공단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남북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기 전까지 개성공단 재가동은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어서 20년 가까이 지속된 남북경협도 당분간 ‘빙하기’를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1998년 남북 교역 시작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남북 교류협력 마지막 통로 닫는 것…북한 핵포기해야 재가동"
남북한이 교역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88년이다. 그해 7월 ‘7·7 특별선언’과 같은 해 10월 ‘남북물자교류에 대한 기본지침서’가 나오면서다. 그러나 당시 남북 교역은 법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해 시범사업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교역 규모는 연간 2000만달러 수준으로 미미했고 교역도 홍콩 등을 경유한 간접교역 형식이었다.

남북 경협의 실질적 출발은 1990년 8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과 ‘남북협력기금법’ 제정 등 법적 근거가 마련된 뒤인 1991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92년부터는 위탁가공교역이 도입됐다. 원·부자재를 북한에 보내 북한에서 가공한 뒤 완성품을 국내에 들여오거나 해외에 수출하는 방식이다. 남북은 1998년 금강산 관광 사업을 시작했고 이어 2000년 8월 개성에 공단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개성공단은 2003년 착공해 2004년부터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남북 경협의 ‘마지막 끈’ 개성공단

1990년대 본격화한 남북 경협은 북한의 도발 등에 따라 부침을 겪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도발 이후 정부는 ‘5·24 조치’를 통해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 교역을 중단했다.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 투자 및 진행 중인 사업의 투자 확대 금지, 대북 지원사업 보류 등이 골자였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여파로 2013년 4월 개성공단 사업이 일시 중단됐다가 5개월 만에 재가동되기도 했다. 당시 남북은 개성공단을 정상화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 없이”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는 데 합의했다.

개성공단을 통한 교역은 빠르게 증가했다. 제품 생산 첫해인 2004년 4168만달러였던 교역액은 지난해 27억356만달러로 65배 가까이 늘었다. 5·24 조치 이후 남북의 교역 통로는 사실상 개성공단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2009년 남북 교역에서 개성공단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6.0%였지만 지난해 이 비중은 99.6%까지 올라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은 남북교류협력의 마지막 통로를 닫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경협 중단 장기화될 듯

정부는 개성공단 재가동 조건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내세우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개성공단 재가동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에 달려 있다”며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해소하고, 개성공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북한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남북 경협 경색이 장기화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관련 사업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개성공단에 외국 기업을 유치하는 등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추진하는 한편 ‘나진·하산 물류사업’ 추진을 통해 육상 및 해상 복합물류 통로를 개설하는 등 ‘한반도 국토개발 마스터플랜’을 수립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정부는 또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동북아개발은행을 설립해 북한 개발 등을 돕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잇따른 도발과 개성공단 사업 중단으로 이들 계획은 추진이 어려워졌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