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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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

서울 이화동 한국생명의전화 사무실 벽에 붙어 있는 구호다. 1976년 국내 최초의 전화상담기관으로 출범한 지 올해로 40년, 1년 365일 24시간 동안 전국 16개 지부에서 3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는 이들에게 삶의 희망을 다시 불어넣어 주는 자살 예방 캠페인이 이곳의 주 업무다. 지난해 아산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아산상 사회봉사상을 받았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사진)을 최근 만났다. “‘한 명이 자살하면 최소 여섯 명의 자살 시도 위험자가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가족과 지인, 목격자 등이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것이죠. 최근 구로역 투신사고는 유가족, 기관사를 비롯해 현장에 있던 수많은 목격자 모두 피해자인데 그대로 묻혀 버렸습니다. 자살 관련 트라우마가 확대 재생산되는 계기가 되죠.”

경북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독실한 크리스천인 하 원장은 1988년부터 28년째 한국생명의전화에 몸 담고 있다. 처음엔 자원봉사 상담자로 시작했다가 한국생명의전화 부천지부를 거쳐 1993년부터 서울에서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전화 심리상담을 ‘정신의 119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전화기를 통해 목소리를 듣기 때문에 실제로는 숨소리까지 들리며 귀를 맞대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가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느 날 미국에 사는 동포 한 분이 ‘용인에 살고 있는 친구가 울면서 내게 전화했는데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다’며 자기 친구의 전화번호를 저희에게 알려주셨어요. 그 분의 친구와 경찰에 동시 연락해 자살 시도를 막을 수 있었어요. 국경을 넘는 공동체가 되고 있음을 실감했죠.”

한국생명의전화에서는 2011년부터 마포대교를 비롯해 한강 다리 14곳에 ‘SOS생명의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하 원장은 “서로 다른 곳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다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은 대단히 아이로니컬한 일”이라며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SOS생명의전화로 통화하러 일부러 다리에 오는 사람도 있어요. 대부분 10대 청소년이죠. 그만큼 소통 창구가 없다는 뜻 아닐까요. ‘죽고 싶다’는 호소는 도와 달라는 절박함을 나타내는 신호입니다. 그걸 외면하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없어집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