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위안부 피해자의 실화를 다룬 영화 ‘귀향’.
일제시대 위안부 피해자의 실화를 다룬 영화 ‘귀향’.
열너댓 살 위안부 소녀들이 일본군 부대 근처 흙구덩이로 끌려간다. 상부 지시를 받은 일본군이 소녀들을 향해 일제히 발사하자 하나둘씩 쓰러진다. 갑자기 총탄이 날아들어 일본군이 쓰러지기 시작한다. 조선인과 중국인의 독립군 부대가 기습한 것이다. 아비규환 속에 소녀가 달아나자 일본군이 총을 쏘며 쫓아오는데….

일제시대 위안부 피해자의 실화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 ‘귀향’(감독 조정래)의 한 장면이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에 착수한 뒤 14년 만에 완성됐다. 한국 미국 일본 등 각국에서 7만5000여명이 ‘크라우드 펀딩’에 참가해 조달한 12억원에 개인투자자들의 13억원 등 순제작비 25억원을 모아 제작했다. 주요 배우와 스태프는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영화는 위안부 출신 할머니(손숙 분)가 TV를 통해 다른 위안부 출신 할머니의 처절한 경험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회상 장면으로 넘어가 1943년 경남 거창에 살던 철부지 소녀 정민(강하나 분)은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다른 소녀 영희 등과 만난다. 그들은 일본군 부대에서 군인에게 끔찍한 구타와 강간을 당한다. 온 몸이 망가진 소녀들은 다시 일본군의 소각명령에 따라 제거될 운명에 처한다.

열여섯 살에 위안부로 끌려간 강일출 할머니가 2001년 미술심리치료를 받던 도중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모티프로 옮긴 장면이다. 소녀가 체험한 극한 공포와 일본군의 잔혹함을 표현했다. 20만여명이 위안부로 끌려갔지만 238명만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됐고, 46명만 생존해 있는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영화는 위안부 소녀의 아픔과 고통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구천을 떠도는 소녀들의 억울한 원혼이 ‘귀향 굿’을 통해 드러난다. 조정래 감독은 “타향에서 불타 숨진 소녀들을 영화에서라도 고향으로 모시고 싶었다”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형 인권문제”라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