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미공개 정보유출 사건 일파만파

최근 증권가에서 한미약품은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다.

최근 수조원대의 신약 수출 계약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증시의 주도주로 각광받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 주식 거래 혐의로 검찰 수사를 야기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한미약품 내부 직원과 증권사 애널리스트(연구원), 펀드매니저로 이어지는 삼각 공생 관계가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여의도 증권가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미공개 정보를 처음 듣고 유포한 증권사 애널리스트(1차 정보 취득자)뿐 아니라 이 정보를 전해듣고 부당 이익을 본 펀드매니저들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가시방석 위에 앉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 자산운용사 10여 곳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이 실시된데 이어 펀드매니저 수십명이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여의도를 떠돌고 있다.

이번 불공정거래 의혹 사건의 연루자가 한미약품 회사 내부자와 기관 투자가뿐 아니라 개인투자자까지 1천명이 넘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상장사 직원→증권사→펀드매니저 '검은 공생관계'
증권가의 불법적인 정보 유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가를 띄우려는 상장사 기업설명(IR) 담당 직원과 고객(펀드매니저)을 관리해야 하는 증권사의 애널리스트, 운용 성과를 내야 하는 펀드매니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종종 이뤄지는 일이다.

정보를 미리 듣고 업무 활용뿐 아니라 본인 계좌로 직접 주식을 매매(선행매매)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작년에도 금융당국이 CJ E&M의 실적 정보 사전 유출 혐의로 해당 애널리스트를 검찰에 고발하고 해당 증권사들을 무더기로 제재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번 한미약품의 미공개 정보 이용 불공정거래 사건도 마찬가지다.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간 학연과 지연 등 친분으로 촘촘히 짜인 네트워크를 통해 미공개 정보가 유통된 것으로 전해진다.

A증권사의 관계자는 16일 "펀드매니저들이 증권사에 요청하면 담당 애널리스트가 프레젠테이션(PT)을 하는 자리가 종종 마련된다"며 "대신 펀드매니저는 얼마의 약정(주식거래) 물량을 약속하는 식으로 정보 교환과 사교의 장이 열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펀드 운용에 두각을 보이는 이른바 '용대리'(용감한 20∼30대 대리·과장급 펀드매니저)들이 바이오주 등에 과감히 투자해 시장을 '쥐고 흔든다'는 얘기도 나온다.

B 자산운용사의 한 임원급 펀드매니저는 "젊은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이 바이오주를 좋아한다"며 "요즘 젊은 매니저들은 여의도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주식을 매매하거나 심지어 종가 관리까지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이 공정한 게임의 장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 한미약품 주가를 보면 지난 3월19일 7천80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하기 일주일 전부터 특별한 호재 없이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미리 들썩이기 시작했다.

기관투자자는 3월12일부터 19일까지 한미약품 35만2천858주를 사들였다가 발표 직후인 20일과 23일에 10만6천119주를 팔아치웠다.

개인이 한미약품 주식 매집에 나선 것은 그다음이다.

◇ 성과주의·한탕주의에 "공생 뿌리 뽑기 쉽지 않아"
이런 불공정한 거래는 증권가의 지나친 성과주의 때문에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C 증권사의 관계자는 "시장이 수년째 가라앉아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가 단번에 성과를 내기 힘든 상황"이라며 "최근 젊은층에서 빨리 승진을 하거나 스타가 되기 위해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성향이 짙어졌다"고 지적했다.

고수익이라는 달콤한 유혹인 미공개 정보 유통의 관행을 뿌리 뽑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솔직히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면 어떤 경로든 정보를 입수해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미공개 정보 이용 범위도 모호하고 손 놓고 있으면 고객이 '그런 종목도 안 사고 뭐하냐'고 항의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장이 '그들만의 리그'로 흘러간다면 정보에 소외된 개인들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신뢰 회복을 위해선 불공정거래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수사가 용두사미에 그치지 말고 일벌백계를 통해 시장에 강력한 신호를 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음성적으로 굳어진 관행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 펀드매니저는 "법을 강력히 집행하는 것이 잘못된 관행을 고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관련자를 다 구속한다면 누가 위험을 감수하고 미공개 정보를 활용하려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금융감독 당국도 최근 주가조작 등 금융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이 검찰에 고발·통보한 사건의 기소율은 2008∼2012년에 평균 78.1%였으나 2013년부터 올해 9월까지는 평균 86.1%로 높아졌다.

지난 2008년부터 올해 9월까지 검찰 고발·통보 사건의 유죄율은 98.5%에 달해 무죄율(1.50%)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금융업계 스스로 내부통제시스템을 강화하는 등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이 단기 성과 평가시스템 때문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며 "성과평가를 하루나 주간, 월간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해야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홍지인 기자 ljungber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