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만에 재회한 부부…뱃속의 아들 처음 만나

"사진 하나라도 찍어놓고 가지. 아들한테 아버지라고 보여줄 게 아무것도 없었어."

65년 전 새댁은 이제 돌아와 자신 앞에 앉은 남편이 무척이나 야속한지 어깨를 찰싹 때리며 큰 소리로 서럽게 울었다.

"고생했어. 나는 죽어도 이제 원한이 없어."
그 사이 얼굴에 주름살이 깊게 팬 남편은 미안한 듯 부인의 볼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오랜 시간 헤어져야만 했던 부부는 그렇게 다시 만났다.

24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는 긴 세월에 서로의 생사마저 모르는 채로 살아야 했던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 부둥켜안고 감격과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황해북도 개풍군이 고향인 전규명(86) 할아버지는 6·25전쟁 때 북한에 끌려가면서 결혼한 지 2년 만에 아내 한음전(87) 할머니와 헤어졌다.

당시 아내의 배 속에는 지금까지 얼굴마저 보지 못한 아들 완석(65) 씨가 있었다.

흰색 저고리에 자주색 한복 치마를 곱게 입은 한 할머니는 "쟤가 당신 아들이야. 당신 나간 지 석 달 만에 나온 거야"라며 아들을 가리켰다.

전 할아버지는 처음 보는 아들에게 이리로 오라며 손짓했다.

"어머니 결혼(재혼)했어?"
완석 씨가 고개를 젓자 전 할아버지는 북측에 남기고 온 아내를 보며 "그렇게 고왔는데 왜 결혼 안 했어"라며 고왔던 손을 꼭 잡았다.

이번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에 참가하는 남측 참가자 가운데 최고령자 중 한 명인 이석주(98) 할아버지는 60여 년 만에 아들 리동욱(70) 씨를 만났다.

먼저 상봉장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동욱 씨는 이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타고 들어오자 벌떡 일어나 아버지를 맞았다.

"이동욱이가 맞나?"라고 아버지가 울먹이며 물었고 "맞습니다"라고 아들이 답했다.

아들은 아버지 앞이라 울지 않으려고 했다.

이날을 위해 손수 장만한 양복을 멋들어지게 입고 온 이 할아버지는 남측 사위들이 그려온 가계도를 아들에게 보여줬고, 동욱 씨는 정성스럽게 코팅한 사진 예닐곱 장을 떨리는 손으로 꺼내 아버지에게 보여주며 어머니와 누나, 아내를 소개했다.

흐릿한 사진 속의 아내를 본 이 할아버지는 "이 양반하고 내가 스물여덟하고 서른넷에 헤어져서…"라며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그리고는 "갓난아이 때 (봤는데, 이제는) 너무 늙었어. 고생을 많이 했어"라며 마른 아들의 얼굴을 보고 미안해했다.

이석주 할아버지 가족처럼 상봉장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이산가족들은 서로 사진을 꺼내보며 잊혀진 기억을 공유했다.

이봉진(82) 할아버지는 탁자 위에 과거 사진을 잔뜩 펼쳐놓고는 북측에 두고 온 누나의 아들과 딸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김유남(89) 할머니 가족은 남측의 사위가 가져온 디지털카메라로 긴 세월 보지 못한 북측 동생과의 추억을 남기려고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배양효(92)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북측의 아들 상만(65) 씨에게 "너 오면 줄려고 (집을) 2천만 원 들여서 깨끗이 청소해놨어"라며 꼭 껴안아줬다.

아들은 그 옛날 아버지와 남측의 여동생에게 불러주고 싶었던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부르며 지나간 시간을 회상했다.

이번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에 참가한 2차 남측 방문단은 모두 90가족으로, 이 중 부녀 상봉 5가족, 모자 상봉 4가족, 부자 상봉 2가족, 모녀와 부부 상봉이 각각 한가족이다.

(금강산=연합뉴스) 공동취재단·임은진 기자 =engi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