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 세종, 민본 정치를 보여주다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는 훈민정음.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이며 인류가 축적한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라는 찬사를 받은 이 문자를 창제한 이는 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조선 제4대 왕 세종입니다. 재위 기간 32년 동안 찬란한 업적을 남긴 그의 통치를 꿰뚫는 코드는 단 한 가지, 바로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정치입니다.

백성의 먹고사는 것을 해결하고자 한 어진 왕

관상감 측우대 (기상청 관리)
관상감 측우대 (기상청 관리)
국가가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다면 백성은 무엇을 근본으로 할까요. 당연히 먹고 사는 것이 최우선이겠지요. 그래서 세종은 농사에 주목합니다. 농사가 입고 먹는 것의 근원이기 때문이지요. 유교의 진정한 왕도 정치는 권농에서 시작한다고 본 것이지요. 먼저 세종은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기 위하여 농사직설을 편찬합니다. 중국 농법이 우리 땅에는 당연히 맞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뛰어난 농민의 농사 경험과 지식을 모아 편찬한 것이지요. 그러나 책만으로는 부족하겠지요. 특히 농사는 파종부터 수확까지 시기를 놓치면 안 됩니다. 햇살과 물의 양도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세종은 측우기와 물시계, 해시계를 고안해냅니다.

단순히 백성을 위하는 마음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세종은 농사에 필요한 여러 과학 도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물론 여러분이 잘 아는 장영실을 통해서이지요. 장영실을 추천한 것은 명재상 황희입니다. 그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본 세종은 미천한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하도록 길을 열어주었으며, 장영실은 물시계인 자격루와 측우기 등을 제작하게 됩니다. 자격루는 물의 부력을 이용해 쇠구슬을 움직여 북과 종을 침으로써 시간을 알렸다고 합니다. 자동 물시계인 것이지요. 현재는 중종 때에 다시 제작한 자격루의 일부만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측우기는 빗물을 그릇에 받아 강우량을 재는 도구로써 전국적인 강우량을 알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습니다. 또한 가마솥처럼 오목한 모양의 시계판에 시각선인 세로선과 계절선인 가로선을 새겨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를 종로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하기도 했지요.

여론 조사로 세금 징수의 기준을 마련하다

앙부일구 (국립고궁박물관 관리)
앙부일구 (국립고궁박물관 관리)
여기서 멈추지 않고 세종은 당시 중국 베이징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인 수시력이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 것을 알고 천체 운행을 관측하는 혼천의를 제작, 관찰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24절기인 입춘이 중국식으로 하면 우리나라의 시기와 맞지 않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지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었으며 그 결과 서울, 즉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계산한 칠정산이라는 역법서를 만들게 됩니다. 당연히 이제 우리나라에 맞는 24절기를 계산하고 이에 맞춰 농사를 안정적으로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권농정책과 도구 제작은 곧 토지와 세금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도 확대되었습니다. 당시 관리들이 토지세를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권력을 남용해 수취 기준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거두는 등 횡포가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세금은 국가 재정의 가장 핵심이지만, 또한 백성들에게서 가장 큰 원성을 들을 수 있고 심지어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지나친 세금 징수는 오히려 농민 봉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세종은 문무백관부터 평범한 농민까지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놀라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전제 왕권의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민주적 정책 결정 과정이었지요. 그 결과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고, 이와 함께 풍년이냐 흉년이냐에 따라 토지세를 차등해서 걷는 방안을 확정짓습니다. 그래서 당시 상황에 따라 토지 1결당 최대 20두부터 최하 4두까지 합리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획기적 방안을 마련합니다.

왕권과 신권의 조화, 포용의 리더십

[한국사 공부] 세종, 민본 정치를 보여주다
이렇게 세종이 민본 정치와 그 정책 방안을 촘촘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었던 밑바탕은 무엇일까요. 저는 무엇보다 세종의 탁월한 리더십이 그 핵심이라고 여깁니다. 아버지 태종의 리더십은 강함, 즉 힘을 바탕으로 하였지요. 세종은 정반대로 재상을 비롯한 신권을 포용하고 왕권과 신권을 조화롭게 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그것이 제도적으로는 ‘의정부 서사제’로 구체화됩니다. 세종은 인사권과 군사권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권력 두 가지를 장악하고 나머지는 모두 신하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중용의 도를 발휘합니다. 의정부 서사제는 6조에서 올린 일에 대해 재상들이 의정부에서 심사숙고하여 합의한 뒤 왕에게 재가를 받는 절차로, 신하들의 능력을 최대한 인정하고 끌어올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황희와 맹사성 등의 명재상을 기억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면서 세종 때의 조선은 한 가지 일만을 위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바로 하늘과 같은 존재, 즉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시하는 것이 그것이지요.

■ 최경석 선생님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현재 대원고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