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내걸어 체제결속 도모…당분간 북미관계 찬바람 불 듯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국제사회의 대북 '인권 공세'를 주도하는 미국에 대해 원색적으로 분노를 표출해 주목된다.

조선중앙통신은 25일 김 제1위원장의 황해남도 신천박물관 현지지도 소식을 보도하며 그가 미국을 비난한 발언들을 그대로 소개했다.

김 제1위원장은 6·25 전쟁 당시 미군이 신천군 일대에서 대규모 양민 학살을 저질렀다며 '살인귀', '식인종', '침략의 원흉이고 흉물' 등 거친 표현으로 미국을 비난했다.

김 제1위원장이 집권 이후 처음으로 '반미 교양의 거점'인 신천박물관을 찾아 작심이라도 한 듯 대미 비난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북한 공식 매체의 미국 비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고지도자가 직접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이례적이다.

김 제1위원장이 미국 주도 하의 대북 인권 공세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라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최근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은 북한 인권문제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와 책임 규명을 강조하며 김 제1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이런 움직임을 '최고존엄 모독'이자 '체제붕괴 시도'로 간주하며 정면 대응하겠다는 뜻을 천명해왔다.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는 지난 23일 발표한 성명에서 인권 공세에 맞서 '초강경 대응전'을 펼칠 것이라며 '첫째 가는 대상'으로 미국을 겨냥했다.

김 제1위원장이 직접 나서 미국을 비난한 것은 북한 내부적으로 '반미'의 기치를 선명히 내걸어 체제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북 인권 공세가 북한에 자본주의 문물을 침투시키는 활동을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해 주민들의 이반 현상을 막겠다는 것이다.

김 제1위원장도 "적에 대한 환상은 곧 죽음"이라고 강조하며 주민들의 '복수결의 모임'을 활성화하라고 지시하는 등 '반미 교양'을 독려했다.

김 제1위원장이 직접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주민들의 반미 의식 고취를 강조한 만큼 당분간 북미관계에는 찬바람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이 이달 초 북한에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을 파견하고 북한이 미국인 억류자들을 석방한 것을 계기로 조성되는 듯했던 북미관계 개선 분위기도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대미 비난 발언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권 공세에 대해 얼마나 불만을 갖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최고지도자가 직접 미국을 비난한 것은 당분간 북미관계에서 적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ljglo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