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여론몰이에 본격 나섰다. 24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상고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의견 수렴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대법관 1명당 年 3000건 재판 맡아…경범죄 등 전담할 별도 상고법원 필요"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갈렸다.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선고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반 상고 사건을 처리할 별도의 상고법원을 설치해야 한다”는 찬성론에 대해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싶어하는 국민 정서에 반하는 방안”이라는 반론도 만만찮았다. 열쇠는 국회가 쥐고 있다. 대법원은 2005년에도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설치하는 안을 추진했지만 국회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한승 대법원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은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대법원이 최고 법원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하려면 상고법원 설치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한 실장은 “현재 우리 대법원은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너무 많아 법률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어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심리를 거치지 못하고 있다”며 “대법원의 법령 해석 통일 및 정책 법원 기능이 약화돼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국내 상고 사건은 1991년에 1만건을 넘었고 2004년에는 2만건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3만6000건에 달하는 등 최근 20여년 동안 3배 넘게 늘었다. 대법관 1명당 연간 3000건씩 처리하는 셈이다. 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대법원의 민사 합의사건 평균 처리 기간은 2009년 131.2일에서 지난해 179.3일로 늘었다.

2년 넘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민사 상고 사건도 2009년 127건에서 지난해 325건으로 늘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상고 사건의 35% 정도가 경범죄 등 벌금형으로 끝날 사건이지만 일단 대법원의 판단을 받고 보자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는 8만원짜리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 사건까지 대법원에서 처리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선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특수한 사건만 상고심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상고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독일 연방대법원은 연간 7200여건의 상고 사건을 처리하고 일본 최고재판소도 2000~3000건의 상고 사건을 접수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상고법원 설치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토론자로 나온 서봉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6부장검사는 “1심 단독판사가 선고하는 형사사건에 대한 불복이 많은 게 상고 사건 폭증의 근본 원인”이라며 “국민의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합의부에서 사건을 처리하게 함으로써 대법원에 신청하는 사건을 자연스레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