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목표는 승리…'사람 좋다' 소리 들으면 조직 망가져"
“애정 없는 비정함은 없다”
‘고생했더니 이런 날 오는구나’
조직원들이 느끼게 해야 리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
내가 걸어가면 새 길이 나는 것
무슨 일이라도 하며 세상 배워야

감독 13번 물러났는데 이제는…


“감독이 선수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는다면 이미 그 팀은 끝난 겁니다. 리더는 상식이 아닌 비상식적인 사고로 무장하고, 목표는 오직 조직의 승리여야 합니다.”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사진)은 여전히 차갑고 단호했다. 프로 감독직을 뒤로하고 야심차게 맡았던 독립야구단 고양원더스가 3년 만에 해체되는 시련을 겪었지만, 김 감독의 낮은 목소리는 800여개 좌석을 꽉 매운 청중을 압도했다. 24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제8회 인적자원개발 콘퍼런스’에서다. 김 감독은 고용노동부가 주최하고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주관한 이 행사 둘째 날 기조강연을 맡았다.

강연이 끝난 뒤 김 감독은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강연에서 못다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김 감독이 가장 강조한 것은 ‘리더십’이었다.

“요즘 리더들은 아랫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조직의 리더가 아랫사람들에게 ‘힘들다’고 얘기하는 것은 ‘나 이렇게 힘드니 알아달라’는 말이에요.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힘들다고 하겠지요. 아무 것도 안 되는 겁니다. 최대한 말을 줄이고, 사람들이 리더의 마음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내가 감독을 맡는 동안 선수나 코치들과 개인적으로 차 한 잔, 밥 한 끼 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는 “오로지 목표는 승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 김성근과 감독 김성근은 달라야 했죠. 사람 좋다는 소리 들으며 인간적으로 선수들을 대하면 그때야 좋겠죠. 그건 선수도 조직도 망가지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조직이 잘돼야 구성원인 선수들도 성장할 수 있는 거잖아요.”

프로야구 감독 시절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1990년대 후반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할 때였지요. 당시 삼성, 해태의 야구는 ‘만원짜리’였고, 쌍방울은 ‘천원짜리’였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백전백패였지요. 상식을 깨고 1회부터 번트를 지시했어요. 욕 많이 먹었죠. 김성근 야구는 더럽다면서. 1회에 투수 네 명을 바꾼 적도 있어요. 동네야구에서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며 매스컴은 물론 야구계에서도 비난하더군요. 하지만 감독의 존재 이유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써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것 아닙니까.”

‘비정한 승부사’라는 별명에 대해서는 “애정 없는 비정함은 없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평소 가혹한 훈련에 힘들어하던 선수들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순간에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렇게 고생했더니 이런 날이 오는구나’ 조직원들이 이런 말을 하게끔 만드는 것이 리더가 할 일이지요.” 김 감독은 5년간 SK와이번스를 이끌며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세 차례나 들어올렸다.

청년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인생이란 이미 나 있는 길을 가는 게 아닙니다. 내가 걸어가면 길이 새로 나는 것이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길이 있는 겁니다. 좋은 자리에 앉고 싶은데 그 과정을 기피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요. 청년들이 낙담하지 않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무엇이라도 하면서 세상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어 자신의 소년시절 이야기도 들려줬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 새벽 우유배달로 학비를 벌었어요. 그래도 힘들지 않았어요. 배달을 시작하면서 ‘오늘은 1분만 단축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즐겼지요. 건설현장에서는 삽질을 하면서 팔이 아닌 무릎의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요. 그런 것들이 모두 야구에 도움이 됐죠. 인생이 괴롭다고 생각하면 이미 그 삶의 미래는 어두운 겁니다.”

고양원더스 해체라는 민감한 질문을 던져봤다. “지금까지 감독직에서 13번 물러났는데, 팀이 해체된 건 처음입니다. 선수들에게도 구단주에게도, 자책감이 큽니다. 요즘 잠도 잘 못자요. 오늘은 강연을 해야 해서 약을 먹고 왔습니다. 평생 야구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삶을 좀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