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수도 울란
[취재수첩] 외국인들의 이유 있는 '몽골 불신'
바토르에 있는 칭기즈칸 광장.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은 ‘수흐바토르 광장’으로 불렸다. 수흐바토르는 1923년 탈(脫) 중국을 선언하고 몽골 정부를 수립해 몽골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칭기즈칸이 다시 등장한 곳은 옛 수흐바토르 광장뿐이 아니다. 울란바토르 자이승 언덕 위에도 칭기즈칸의 대형 초상화가 들어섰다. 몽골제국에 대한 자부심과 그리움이 만들어낸 결과다.

몽골인들은 800여년 전 영화를 꿈꾸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몽골의 경상수지는 30억달러 적자였다. 변변한 산업 없이 자원 수출에 의존하고 있지만, 그나마 작년엔 경기침체로 수출 규모가 줄어들었다. 2012년 44억달러였던 외국인 직접투자액(FDI)도 작년엔 20억달러로 급감했다. 그 결과 외환보유액은 22억달러(작년 말 추정)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현지 통화인 투구르의 달러 대비 가치도 연초 대비 20%가량 급락했다.

위기를 극복할 방법은 외국 투자자 유치이지만 몽골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여의치 않다. 세계 최대 광산으로 꼽히는 오유톨고이 추가 개발비 분담을 놓고 주주인 리오틴토(호주, 66%)와 몽골 정부(34%) 간 분쟁이 일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몽골 정부가 당초 계약할 때와 다른 조건을 내세우고 있는 게 화근이다. 김대용 한국광물자원공사 몽골사무소장은 “작년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한 뒤 외국 회사와 맺었던 계약을 무효화하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피해도 적지 않다. 울란바토르에 43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짓기로 계약한 한국의 한 중견 건설회사는 발주처에 공사 대금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또 다른 중견 건설사인 P사는 공사기한을 못 맞췄다는 이유로 과징금 폭탄을 맞고 철수했다. 이희상 KOTRA 울란바토르 무역관장은 “말을 수시로 뒤집는 몽골 바이어들 때문에 골탕을 먹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역사책 속의 몽골은 대제국으로 존재하는지 몰라도 현실의 몽골은 그렇지 않다. 지금 몽골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칭기즈칸에 대한 자부심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제국이 왜 패망했는지를 깨닫는 일인 것 같다.

박동휘 울란바토르/증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