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A로펌이 최근 대기업의 100억원대 인수합병(M&A) 관련 법률 자문을 해주면서 3000만원의 자문료를 받기로 했다. 여기에는 실사에 드는 비용이나 계약서 작성 등 온갖 비용이 포함됐으며, A로펌은 추가로 비용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확약서까지 썼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2억원은 족히 청구했을 것이란 게 업계의 관측이다.

한국경제신문이 김앤장 광장 태평양 세종 율촌 화우 바른 등 국내 7대 로펌이 법률부문에서 벌어들인 지난해 매출을 조사한 결과 총 1조3336억원이었다. 2011년 1조198억원에서 31% 증가한 것이다. 이들 7대 로펌은 이 기간에 변호사(외국 변호사 포함)를 396명(21%) 늘렸다. 변호사를 늘리면 그만큼 매출도 늘어날 것이라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 것이다. 그러나 당초 의도했던 변호사 증가=매출 및 순이익 증가라는 등식 대신 ‘변호사 숫자 증가→비용 증가→과당 수임 경쟁→덤핑 속출’의 악순환 고리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른바 ‘대형화의 함정’이다.

◆출혈 경쟁…연봉 내리고 유학 줄이고

[Law&Biz] '대형화 함정'에 빠진 로펌…1년 새 수임료 절반 깎여
최근 7대 로펌 중 한 곳이 500억원대 기업소송을 수임하는 대가로 1심부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총 1억8000만원을 받기로 했다. 수임료 계산은 통상 1심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대기업 고객 유치작전을 편 10위권 로펌이 ‘3심까지 수임료 0원’이라는 파격 조건을 제시하는 바람에 덤핑 경쟁이 불붙은 결과다.

작년부터 100억원대 기업 소송에서 김앤장을 제외한 로펌들의 평균 수임료는 2억5000만원 정도로 내려갔다. 2012년까지는 김앤장이 6억원, 나머지 로펌은 4억원 정도였다고 한다.

로펌 간 출혈경쟁에 따른 ‘내상’은 소속 변호사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얼마 전 김앤장에서 파트너들의 지분을 줄인 데 이어 대형 B로펌은 연봉체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신입 변호사의 임금을 낮췄다. 월 850만원 안팎으로 고정급이던 연봉에서 월 150만원씩을 성과급으로 돌린 것이다. 초임은 성과를 내기 어려운 만큼 월급이 사실상 700만원으로 떨어진 셈이라고 신입 변호사들은 설명한다. 종래 6~7년차 변호사 때 보내주는 해외 유학 프로그램도 국내 학위로 전환되거나 인원이 축소됐다. 5년차인 한 변호사는 “올해가 사실상 마지막 유학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내실은 ‘미지수’

지난해 로펌의 외견상 성적표는 괜찮다. 광장 율촌 세종 화우는 전년 대비 매출 증가폭이 15~20%에 달했다. 하지만 변호사 1인당 매출은 율촌과 세종을 제외하면 대부분 하향곡선을 긋거나 전년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증가한 변호사 숫자에 비례해 매출이 늘지 않은 탓이다.

변호사업계는 “변호사 숫자 경쟁은 출혈 경쟁”이라며 “다른 로펌이 하니까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사람을 뽑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따른 부작용이 저가 덤핑 경쟁 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태평양과 화우의 변호사 1인당 매출이 오히려 떨어진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변호사 숫자 2위권인 태평양의 한 변호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변호사 숫자를 늘려 2위권 로펌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숫자 늘리는 데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전철 밟을 수도”

로펌들이 양적성장에 주력하고 있는 현상은 회계법인을 떠올린다.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법률시장이 완전 개방되고 10년쯤 지나면 김앤장 변호사 연봉이 삼성전자 신입 직원 연봉보다 낮아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회계사들의 폭발적인 증가와 맞물려 회계법인들은 대기업 사건이나 감사 등을 맡기 위해 덤핑 경쟁에 나섰고 이로 인해 엄청난 어려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회계사들의 수입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기업보다 훨씬 좋았지만 지금은 잘나가는 대기업 사원 수준이라는 것이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