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엔 허재호·정모씨가 선 판사 '맹공'
지금은 정씨 법정구속, 허씨는 '국민 지탄' 속 수사받아


2011년 일어난 법정관리 파문으로 비리 향판이라는 낙인이 찍힌 선재성 부장판사(현 사법연수원 교수)가 이른바 황제노역 파문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가 대주그룹 계열사들을 법정관리하면서 허재호 전 회장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려 했다가 오히려 역공당했다고 주장하면서부터다.

선 부장판사의 비리 의혹을 폭로하는 데 앞장섰거나 앞장선 것으로 의심받는 기업인들은 범죄 혐의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선 부장판사는 불법행위를 바로잡으려는 데 반발한 기업인들의 악의적 대응으로 피해를 봤다는 입장이어서 당시 법정관리 파문 전개과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 2011년 법정관리 파문은

광주지법 수석부장이자 파산부 재판장이었던 선 부장판사는 자신이 맡은 법정관리 기업의 관계인으로 친형, 동창 변호사, 전직 법원 운전사 등을 선임하거나 추천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받았다.

선 부장판사는 법정관리 중인 기업 대표들이 배임 등 불법행위를 하고 법원까지 속이려는 사례가 잦아 '믿을만한 사람'을 앉혀 감독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검찰은 선 부장판사에 대한 진정 등을 토대로 이례적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고위 법관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섰다.

압수수색 등 고강도 수사 끝에 선 부장판사는 뇌물수수, 변호사법 위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선 부장판사가 근무한 광주지법 1심 재판부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지만 공정성을 의심한 검찰의 관할 이전신청이 최초로 받아들여지면서 2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사실 중 일부(변호사법 위반죄)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으며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대주그룹 계열사의 법정관리 업무와 관련한 사건에서 동창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알선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되고 나머지 혐의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선 부장판사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검찰 수사와 형사처벌까지 이어진 결정적 배경에는 진정 2건이 있었다.

◇ 진정서 제출자로 의심받는 기업인들, 3년 뒤 수사·재판 신세
진정서 1건은 익명의 투서 형식으로 검찰에 전달됐으며 다른 1건은 나주에서 폐기물 업체를 운영하던 정모씨가 제출했다.

이들 진정서는 선 부장판사가 법정관리 기업 감사로 친형을 선임한 사실이 일부 언론에 알려진 직후 잇따라 접수돼 기존 보도와 맞물려 파문이 확대됐다.

선 부장판사는 익명의 투서 등이 허 전 회장 측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정관리 재판장으로서 대주그룹 계열사간 2천억원대 자금 몰아주기가 배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허 전 회장 등을 고발하려 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려다가 '역공'당했다는 것이다.

정씨도 자신이 운영했던 업체의 법정관리 과정에서 선 부장판사로부터 경영에서 배제됐다.

정씨는 업체의 법정관리인에게 외제차 운영비, 활동비 등 급여 1천만원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선 부장판사는 이사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정씨에 대해 직무 정지 가처분을 내렸다.

선 부장판사로부터 기업활동에 제동을 받고, 검찰에 그의 비리를 알리고, 결국 자신들이 배임으로 수사나 재판을 받게 된 점에서 허 전 회장과 정씨는 미묘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현재 허 전 회장은 황제노역 파문으로 빗발치는 공분을 사고 있고, 정씨는 법정관리인에게 뇌물을 전달한 혐의(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위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지난 10일 법정구속됐다.

정씨는 폐기물 업체 운영 과정에서 일어난 배임으로 2006년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또 다른 배임죄로 2012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기도 했다.

선 부장판사는 "정씨가 법원, 검찰, 법원, 언론, 경찰 등 수십여곳에 투서해 언론에 보도되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파문이 커졌다"며 "기업을 좀먹는 도둑을 잡으려다가 오히려 내가 도둑으로 몰린 셈"이라고 주장했다.

(광주연합뉴스) 손상원 기자 sangwon7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