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부적절한 논의…사과할만큼 했다" 발뺌

'군 위안부', '역사교과서 왜곡' 등 과거사 문제를 놓고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한국, 북한, 중국, 일본간 일대 격론이 벌어졌다.

1차 세계대전 발생 100주년을 맞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주최한 '전쟁의 교훈과 영구평화 모색' 토론회에서다.

남북한과 중국은 '삼각동맹'을 맺기로 약속이라도 한 듯 격한 어조로 ▲군 위안부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맹비난했다.

특히 남북한과 중국은 40여개국의 1차 발표가 끝난 뒤 추가발언을 신청해 일본을 재차 압박했다.

이에 질세라 일본도 재반박에 나서는 등 오전 10시부터 9시간 가까이 진행된 토론 과정에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유엔본부에 몰린 각국 언론들도 4개국이 서로 치고받으며 격론을 이어가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중국이 포문을 열었다.

류제이(劉結一) 중국 유엔대사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참배한 야스쿠니 신사는 A급 전쟁범죄자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전쟁 범죄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질서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발언에 나선 오 준 주유엔 한국대표부 대사는 최근 동북아시아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모두 일본 때문이라고 지목했다.

구체적으로는 제국주의 시대에 저지른 행동에 대해 잘못된 역사 인식을 가진 일본 지도층의 최근 언행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오 대사는 일본이 최근에는 '위선적 태도'를 보이며 국제사회를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는 상황에서 최근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겠다며 밝힌 '적극적 평화주의' 정책은 위선이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오 대사는 군 위안부 문제가 비단 남북한과 중국, 일본간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국제사회의 현안이 됐다며 일본을 압박했다.

그는 "동아시아 국가들뿐 아니라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데도 일본은 아직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수세에 몰린 일본의 발언 다음,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북한의 리동일 유엔 차석대사는 준비한 원고도 없이 시종일관 일본을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예의 북한식 어조를 사용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일본을 몰아붙였다.

리 차석대사는 "한국인들은 몇십년이 지나도 일본이 저지른 일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일본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2차 세계대전 때 저지른 만행은 역사상 그 어떤 사태보다도 야만적이며 잔혹하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가장 끔찍한 범죄는 '성노예' 범죄라고 지목했다.

삼각동맹을 연상시키는 남북한과 중국의 비판이 이어지자 우메모토 가즈요시(梅本和義) 일본 유엔 차석대사는 "이런 문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주최한 회의에서 논의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면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우메모토 차석대사는 당초 토론 참가국 가운데 27번째로 발언에 나설 예정이었으나 돌연 북한에 바로 앞선 42번째로 순서를 바꿨다.

일본에 대한 비난 강도가 거세지자 원고 수정 등 대응전략을 바꾸기 위한 것으로 여겨졌다.

우메모토 대사는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때의 일들에 대해 깊은 회환과 진심이 담긴 사과를 이미 여러 차례 했다"면서 "일본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라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심지어 "일본의 현 정부는 (평화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과거 정부와 같은 입장, 같은 심정"이라고까지 강변했다.

'삼각동맹'의 거센 압박에도 일본이 전혀 달라진 태도를 보이지 않자 남북한과 중국은 일제히 추가 발언을 신청해 '2차 공세'에 나섰다.

우리 측에서는 설경훈 차석대사가 나서 "일본의 바람과는 달리 과거사 문제는 일본이 (합당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도대체 일본이 세계평화에 어떻게 기여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힐난했다.

북한의 리 차석대사 역시 "일본이 몰상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일본은 인류를 상대로 역사적인 범죄를 저질렀지만, 어떤 나라도 여성들을 자국 군대의 위안부로 삼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어 류 중국 대사는 분에 찬 목소리로 "일본은 신사참배, 군 위안부, 역사교과서 문제 모두를 정당화했다"면서 "유엔 193개 회원국 가운데 어느 나라의 정상도 A급 전쟁범죄자가 있는 신사에 방문하지 않는다"고 몰아세웠다.

그러자 다시 발언에 나선 우메모토 일본 대사는 남북한과 중국의 공세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기존에 발표한 것과 같은 입장"이라며 서둘러 발언을 마쳤다.

(취재보조 정현주 통신원)



(유엔본부연합뉴스) 이강원 특파원 gija007@yna.co.krhj23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