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급 중심 단순화…고정 상여·수당 줄고 성과급 확산 전망
기업 부담 늘고 내년 임단협 갈등 불가피…장시간 근로 관행 바뀔 듯


대법원이 18일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면서 건국 후 처음으로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가 이뤄지게 됐다.

초과근로수당 등을 산정하는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면서 그동안 상여금, 각종 수당으로 항목만 늘어났던 월급 명세서는 기본급 중심으로 단순하게 바뀔 전망이다.

아울러 기본급 인상을 억제하고 수당을 추가했던 기업들은 초과근로수당 인상 등의 부담을 덜려면 임금 체계를 손질할 수밖에 없어 내년 임단협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초과근로수당을 통해 노사가 암묵적으로 유지해왔던 장시간 근로 관행도 바뀔 전망이다.

◇ 통상임금 범위 확대…고정 상여는 사실상 기본급

통상임금은 법으로 규정된 게 아니어서 그동안 산업 현장에서 범위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졌다.

통상임금이라는 용어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등장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은 없었고 1969년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시간급 등의 환산방법을 규정한 게 전부였다.

1982년 근로기준법 시행령에서 통상임금의 정의 규정을 두었는데 여기에 상여금은 포함되지 않았다.

1988년 고용부 예규로 통상임금 산정 지침이 만들었을 때 1임금지급기(1개월)를 초과하거나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생활보조적, 복리후생적으로 지급하는 통근수당, 차량유지비, 가족수당, 급식비, 교육수당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았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기본급 다음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더욱이 대법원은 통상임금에서 상여금을 제외한 노사 합의가 무효라고 판단함으로써 상여금이 기본급과 다름없는 고정적 임금임을 명확히 했다.

또 근속기간 등에 따라 다른 수당, 기술자격 보유자에게 지급하는 기술수당, 최소한도로 받는 성과급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에 통상임금 범위는 더 커졌다.

◇ 기업 쓰나미급 충격파…임금체계 단순화 급물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당장 기업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던졌다.

고용부가 올해 6월 100인 이상 사업장 97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월평균 임금 총액(298만원) 중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율은 57.3%에 그쳤다.

고정상여는 11.8%, 변동상여가 5.8%였다.

또 59.1%의 사업장이 고정 상여금을 지급했다.

반면 고정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잡힌 사업장은 19.4%에 불과했다.

상여금을 지급하는 업체들은 이제 초과근로수당 등을 산정할 때 상여금을 포함한 통상임금을 토대로 계산해야 한다.

또 임금채권은 소멸시효가 3년이기 때문에 3년치 통상임금을 근거로 수당 지급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도 크다.

대법원은 신의성실 원칙에 따라 회사 경영이 어려워질 정도라면 소급해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했으나, 개별 기업 사정이 달라서 소급 소송이 계속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재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소멸시효를 적용해 소급했을 때 비용까지 계산하면 기업의 추가 부담이 38조5천500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급분을 제외하더라도 판결 이후의 퇴직금 충당금 등을 고려할 때 재계는 8조∼9조원의 부담이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8년 한국노동연구원이 분석한 결과로는 통상임금 확대 시 기업 부담이 약 14∼27%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 산업현장 혼란 불가피…내년 임단협 갈등

통상임금 논란은 복잡한 임금체계에서 비롯됐다.

1980년대 급격한 임금 상승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자 정부가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이를 피하려 기업과 노조가 기본급 인상 대신 각종 수당 지급에 합의한 결과가 관행처럼 굳어진 게 현재의 복잡한 임금체계다.

기업은 장시간 근로에 따른 가산수당 부담을 줄이려고 그동안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던 새로운 여러 수당을 만들었고, 노조는 임단협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고 상여금·수당 신설에 합의해온 셈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기업들은 초과근로수당을 줄이려면 상여금·수당 체계를 조정해야 한다.

기본급을 올리고 고정 상여금, 수당을 차츰 줄이는 대신 직무 성과에 따른 상여금을 늘리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직무, 성과를 더한 임금체계 개편이 시도됐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호봉제가 중심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연봉제 도입률은 52.5%이지만 이 가운데 절반은 호봉급적 임금 결정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로 내년 임단협에서는 통상임금 확대에 따른 수당 인상, 성과급제 확대 등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통상임금 범위 확대로 노조가 얻는 이익도 있지만, 기업들이 연봉제, 성과급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노사가 합의해도 효력이 없기 때문에 개별 근로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수당 인상에 대한 부담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민주노총 정호희 대변인은 "통상임금 문제는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유지하려는 편법적 임금체계가 본질"이라며 "사용자들은 임금수준을 낮추려고 통상임금 범위를 계속 낮추어왔고 노동자들은 낮은 기본임금을 보충하려고 초과노동을 강요당해 왔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공, 근속 중심에서 능력, 직무, 성과를 반영하는 쪽으로 임금체계가 개편되도록 현장 지도를 할 예정이다.

임무송 고용노동부 근로개선정책관은 18일 "임금제도개선위원회, 산업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신속하게 입법을 추진하겠다"며 "이번 판결 계기로 장시간 근로가 개선되고 임금체계가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 mino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