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실수 한 번에 금융기관이 파산하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고가 현실에서 벌어졌다.

올해 마지막 선물·옵션 만기일인 12일 지수옵션시장에서 대규모 주문실수를 낸 한맥투자증권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문가들은 유사한 사고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주문실수로 460억원 손실…인재 가능성도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맥투자증권은 전날 오전 9시 2분께 코스피200 12월물 옵션 주문을 하면서 시장가보다 현저히 낮거나 높은 가격에 매물을 쏟아냈다.

12월의 두번째 목요일인 12일은 올해 마지막 선물·옵션 만기일인 만큼 가격 변동폭이 큰 날이다.

결제확정 금액은 증권시장 63억원, 파생상품시장 584억원이며, 거래 상대방은 46개사, 체결된 계약은 3만7천900건이나 됐다.

계약건수로는 5만8천건에 육박했으며, 실제 손실액은 46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결국 한맥투자증권은 결제 시한인 13일 오후 4시까지 한국거래소에 결제대금을 납입하지 못해 파산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주문실수로 인한 증권사 파산은 국내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업계에선 '작전'이나 계산된 주문이라기보다는 차익거래 자동매매 프로그램에서 오류가 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보다 공격적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해제해 놓은 것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형사도 통제장치가 돼 있다"면서 "만약 기계의 실수라면 매우 운이 나빴던 것이고 비상식적인 일에 가깝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이 이날 한맥투자증권에 대한 검사에 착수한 것도 이렇게 내부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투자자들의 피해는 제한적일 전망이나 한국거래소의 여타 회원들은 피해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거래소는 현재 4천억원 규모로 조성돼 있는 손해배상공동기금으로 결제대금 부족분을 메울 방침이다.

이 경우 회원사들은 줄어든 만큼을 추가로 출연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사고는 한맥투자증권이 치고, 손실은 여타 증권사들이 공동부담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원사가 한맥측에 구상권을 행사할 수도 있지만 재무상태를 감안하면 회수율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소형 증권사들, 주문사고 빈발…대책은
문제는 올해 들어 국내 소형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유사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에는 KB투자증권이 코스피200 지수선물 주문 실수를 내 190억원의 손실을 봤다.

이는 홍콩계 헤지펀드가 KB투자증권을 통해 실수로 16조원에 달하는 선물 주문을 한꺼번에 쏟아내 일어난 일이었다.

지난 6월 25일에는 KTB투자증권 자기매매팀의 주문실수로 지수선물에 7천계약 이상의 매수 주문이 쏟아졌다.

돈으로 환산하면 8천억원이 넘는 대규모 주문이었던 까닭에 코스피가 일시적으로 20포인트 급등하며 시장에 큰 혼란이 왔다.

전문가들은 소형사일수록 수익 구조가 편중돼 있고, 내부통제가 미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파생상품실장은 "사고별로 이유가 다르겠지만 소형사는 수익원이 다변화돼 있지 않은 만큼 좀 더 적극적인 투자를 했을 수 있다"며 "이에 걸맞은 내부통제가 이뤄졌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고를 사전에 막기는 힘들다"면서 "1차적으로는 매매기법에 대한 내부통제가 좀 더 고도화될 필요가 있고 그에 대한 감독 강화가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사고를 계기로 회원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란 게 남 실장의 주장이다.

실제 한맥투자증권은 증권사라기보다는 선물사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한 증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원래 선물사였는데 법개정으로 선물업과 증권투자업 등이 하나로 묶이는 과정에서 증권이란 이름이 붙었을 뿐 대부분 선물옵션을 다룬다"면서 "증권사들은 대부분 리스크를 고려해 운용하도를 잡아두지만 한맥투자증권은 자본이 크지 않은데도 위험성 높은 상품을 중점적으로 다뤄왔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윤지현 기자 hwang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