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현민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가 전력 소모량을 줄인 IC를 탑재한 네트워크 장비 모듈을 소개하고 있다. KAIST 제공
배현민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가 전력 소모량을 줄인 IC를 탑재한 네트워크 장비 모듈을 소개하고 있다. KAIST 제공
구글은 세계 최대 풍력발전소를 미국 오리건주에 짓고 있다. 23만50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이유는 ‘전기 먹는 하마’인 데이터센터(IDC) 때문이다. 전기요금이 워낙 많이 나오다 보니 발전소를 직접 지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중요한 소식이 지난 18일 나왔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이더넷 칩(통신용 칩)을 배현민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가 개발했다는 것이다. 배 교수를 지난 22일 대전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는 “전력 소모량이 0.75W로 기존 제품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며 “초당 100기가비트(Gbps) 속도의 데이터센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대표적인 제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유일의 0.75W 전력소모

PC나 노트북에도 들어가 있는 이더넷은 컴퓨터에서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주는 필수 부품이다. PC에는 100메가비트(Mbps) 속도의 칩이 들어가지만 데이터센터에서는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10기가비트의 이더넷 칩이 사용된다. 하지만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를 100기가비트급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추세인데, 그와 함께 전력 소모량도 배로 늘어난다는 게 정보기술(IT) 업계의 고민이었다.

배 교수는 “10기가비트 칩이 1W를 소비하는데 100기가비트 칩은 시중에 나와 있는 제일 좋은 칩도 2~3W를 소비한다”며 “이 때문에 100기가비트 칩으로의 업그레이드가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꼭 필요한 부분에만 100기가비트 칩을 쓰고 아직도 대부분은 10기가비트로 데이터센터를 돌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배 교수가 개발한 100기가비트 이더넷 칩은 0.75W를 소비한다. 그는 비결을 야구팀에 빗대어 설명했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모든 타자, 모든 투수가 최고일 필요가 없듯이 이더넷 칩을 구성하는 부품들도 모두 최고의 성능을 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칩의 전체 성능에 기여도가 낮은 부분은 적당히 동작하도록 하면서도 전체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설계를 통해 전력 소모량을 줄였다”고 소개했다. 이어 “2007년 기준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가 미국 전체 전기 소비량의 2%에 달했고 2020년에는 1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통신업체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술 기업 만들 것

배 교수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세계적인 칩을 개발한 것은 아니다. 그는 2010년 KAIST 교수로 오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통신모듈 회사인 미국 피니사르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그는 세계 최초로 100기가비트 이더넷 칩을 개발했다. 지금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100기가비트 이너넷 칩이 배 교수의 이전 작품인 것이다.

이번 0.75W 칩은 그가 한국에 와서 창업한 테라스퀘어란 회사와 KAIST가 공동 개발했다. 그는 “미국 일리노이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도중 지도교수와 같이 만들었던 회사를 피니사르에 매각하면서 대학에서의 연구가 어떻게 사업화로 연결될 수 있는지 경험했다”며 “한국에서 다시 창업한 것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술을 개발하고 학생들에게도 뭔가 본보기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이 시더(Kai Seeder)’라는 학내 벤처 동아리의 지도도 맡고 있다. 배 교수는 “해외에선 우수한 연구인력이 대학과 기업에 골고루 있지만 한국에선 대학에 우수한 연구자원이 몰려 있다”면서 “한국 대학들이 우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화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배 교수는 해외 업체로부터 인수 제안도 받고 있다. 하지만 회사를 좀 더 키우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내년에 본격적으로 양산을 시작한다면 2017년에는 1조원 이상의 매출도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