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부 주변까지 도려내듯 세무조사" 김광두의 '작심비판'
“지금 여건에서 어느 기업이 투자하겠습니까. 정부가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과외교사’로 불리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사진)이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 멍석(투자 여건)도 깔아주지 않은 채 투자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국세청의 전방위적인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마치 수술할 때 잘못해 (환부가 아닌) 주변 부위까지 도려내듯 하니까 기업들이 부담을 갖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1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초청 강연(세계 경제의 급변과 한국의 대응)에서 “정부는 듣기 싫어하겠지만 지금은 기업들이 투자를 과감하게 확대할 시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경기가 어려운 만큼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경쟁력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한 분야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강연 뒤 기자들과 만나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정부가 과감하다 싶을 정도로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정권 초 규제 리스크가 커진 만큼 기업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확실한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저성장 시대의 위기와 기회, 그리고 성공의 조건’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사회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에서는 국세청 세무조사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김 원장은 최근 세무조사에 대해 “본래 취지는 경제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탈세를 잡아내는 것”이라며 “그런데 마치 수술할 때 잘못해 주변 부분까지 더 많이 손을 댄 것처럼 문제가 생기고 있다”며 “가뜩이나 경기가 어려워 중소기업들이 괴로운 상황에서 세무조사까지 겹치니까 더욱 더 어려워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 과감하다 싶을 정도로 규제 풀어야"

그는 “정부가 우선 순위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며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수 확보를 최우선 순위로 본다면 지금처럼 해야겠지만 경기 회복과 성장을 고려한다면 속도를 조절하면서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중국이 연간 7~8%의 성장률을 보이고 우리가 2%대 성장을 하면 5년만 지나면 한국의 많은 산업이 중국에 추월당해 먹고 살 게 없어진다”며 “그래서 성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김 원장은 “정부가 수많은 행정 규제를 풀지 못하는 이유는 이익집단 간 충돌 때문이며 그 뒤에 국회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우리 정치권은 경제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약한 게 현실”이라며 “자신들이 뭘 추구하는지도 모를 정도”라고 성토했다.

그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국회의원 간 충돌 때문에 규제 하나도 풀지 못하고 있다”며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가 국회의원들이 어떤 입법활동을 하는지, 어떤 법을 반대하고 찬성하는지 등을 모니터링해 6개월에 한 번씩 점수를 매겨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민간 투자와 경제 활성화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민간 투자와 경제 활성화에 물꼬를 터줄 방안으로 △교육 인프라 확충 △재난·재해 방지 시설 투자 △부동산 취득세 완화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김 원장은 “사교육에 비해 뒤떨어진 공교육 분야의 인력 및 시설 투자를 적극적으로 한다면 경제 활성화와 공교육 강화, 창의적 인재 양성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낡아 많은 재난과 재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여기에 투자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안전이 높아지고 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취득세를 크게 낮춰 부동산 거래가 늘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이런 투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재정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며 “5년 단위로 국가 부채에 대한 재정 준칙을 만든 뒤 경기가 좋지 않을 땐 5년 평균치보다 높게 지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정책이 투자 위축을 불러온다는 재계의 지적에 “경제민주화 정책 때문에 투자를 못 한다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라며 “경제민주화 법안을 일괄적으로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곤란하며 법안별로 나눠서 봐야 한다”고 했다.

김 원장은 “주로 대기업이 경제민주화 정책이 부담이 된다고 하는데 스스로 반성할 부분도 있다”며 “공정거래에 대한 경제민주화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귀포=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