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태광산업 '환골탈태' 프로젝트
1년5개월째 회장 부재 상황을 맞고 있는 태광그룹이 대대적인 혁신작업에 나섰다. 섬유·석유화학 등 주력사업을 맡고 있는 모기업 태광산업은 2주일에 걸친 강도 높은 마라톤 회의를 시작하고 경영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

이호진 전 회장을 대신해 구원투수로 나선 심재혁 부회장과 최중재 사장이 총대를 멨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레저 등 주요 계열사들도 합병과 청산 등 과감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업전략 원점부터 재검토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앞으로도 똑같을 겁니다. 남들과 차별화되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면 그 사업은 하나 마나 한 겁니다.”

18일 오후 서울 장충동의 태광산업 본사 대회의실. 최 사장의 지적에 회의 참석자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날은 지난 16일부터 시작한 사업진단 회의 3일째로 화섬직물 사업부의 주요 간부들이 모였다. 태광산업은 하반기 사업진단 일정을 2주일로 늘려 하루 한 품목씩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면방 모직물에 이어 나일론 아크릴 과산화수소 탄소섬유 등 주요 제품별로 난상토론을 벌이기로 했다.

최 사장은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면 대체 사업도 고민해야 한다”며 “실패를 겁내지 말고 혁신방안을 찾아보자”고 독려했다. 회의 참석자는 “우리의 단점을 솔직히 드러내고 경쟁력 확보 방안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했다”고 전했다.

태광산업이 비상 수준에 버금가는 경영체제로 전환한 것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 회사는 1950년 창업 이후 노조가 장기간 파업을 벌였던 2001년만 제외하고 매년 흑자를 낸 우량기업이다. 2011년 1분기엔 영업이익률이 18.8%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둔화와 중국발 물량공세 등의 여파로 섬유와 화학 업황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지난해 372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는 수모를 겪었다. 올해 1분기에도 14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회사 관계자는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가 없다면 글로벌 회사들과 경쟁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절박함을 구성원들이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그룹 차원에서 구조조정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IT(정보기술) 계열사인 티시스, 골프장 운영사인 동림관광개발, 자산관리 회사인 TRM 등 3개 회사가 지난달 합병했다. 방송제작 등을 하던 TPNS를 비롯해 템테크, THE컨설팅 등은 해산을 결의하고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탄소섬유 등 신사업 확장

태광은 이 회장이 지난해 2월 횡령·배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뒤 회장직을 내놓자 인터컨티넨탈호텔 사장 출신의 심재혁 전 레드캡투어 사장을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올해 3월엔 사장에 최중재 전 삼성물산 화학사업부장을 선임해 개혁작업을 맡겼다. 두 사람은 회장이 공석인 태광그룹의 컨트롤타워를 책임지고 있다.

태광 관계자는 “기존 사업은 경쟁력을 재검토해 전략을 과감히 다시 짤 것”이라며 “탄소섬유 등 신사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력 사업이 타격을 입긴 했지만 재무구조는 아직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은 4238억원이고, 이익잉여금은 2조4160억원에 달한다. 태광산업은 최근 웅진케미칼 매각 주관사에 인수의향서를 내고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편 작년 12월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4년6월형을 선고받은 이 전 회장은 보석으로 풀려나 서울아산병원에 입원 중이다. 지난해 4월 간암 절제수술을 받은 그는 간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태광 관계자는 “이식 외에는 완치할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식 신청자가 많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