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이 수억원대까지 치솟았던 애널리스트들의 입지가 주식시장 침체로 크게 흔들리고있다. 한경DB
몸값이 수억원대까지 치솟았던 애널리스트들의 입지가 주식시장 침체로 크게 흔들리고있다. 한경DB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꼽혀온 황상연 미래에셋증권 상무가 다음달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리서치센터장 자리는 투자전략가인 류승선 이사에게 넘겼다.

황 상무는 워싱턴주립대 연구원으로 1년 정도 머물며 선진 자본시장을 경험할 생각이다. 앞서 리서치센터 내 인터넷·게임 업종을 담당했던 정우철 이사도 회사를 나왔다. 정 이사는 투자자문사 설립절차를 밟고 있으며 이달 중 허가가 나오면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우리투자증권에서 스몰캡(시가총액이 작은 중소형주) 팀장을 했던 정근해 애널리스트도 지난 4월 그만뒀다. 정 애널리스트는 개인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만 50명 가까이 짐 싸

펀드 찬바람에 짐싸는 스타 애널리스트
이른바 잘나가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속속 떠나고 있다.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애널리스트들 중에서도 ‘스타’들이 지고 있는 분위기다.

황 상무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베스트 애널리스트 타이틀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거머쥐었다. 2008년에는 만 38세의 나이에 최연소 리서치센터장에 올라 화제가 됐다. 정 이사와 정 애널리스트도 수차례 베스트에 오른 베테랑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애널리스트 숫자는 18일 현재 1421명이다. 작년 말 1470명에서 6개월여 만에 50명 가까이 짐을 쌌다. 2010년 1575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년여 동안 154명이 줄었다.

수억원대 연봉은 옛 얘기가 됐다. 한때 몸값이 5억원 안팎에 이르는 애널리스트도 있었으나 지금은 10년차 이상 부·차장급 베스트 애널리스트도 2억~3억원 수준에 머문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애널리스트 연봉을 일괄적으로 20~30% 삭감하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법인영업 위축으로 옛 위상 찾기 힘들 듯

애널리스트들이 ‘찬밥’ 신세가 된 것은 장기화하는 증권시장의 불황 탓이다. 특히 리서치센터가 주로 뒷받침하는 법인영업부가 위축된 영향이 크다.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경제전망을 비롯해 산업과 기업 관련 보고서를 내는 것은 더 많은 주문을 따내기 위함이다. 주식을 대량으로 매매하는 자산운용사, 연기금, 보험사 등이 주된 타깃이다.

애널리스트 전성기는 2007년 전후다. 당시 국내에선 주식형 펀드 붐이 일었다. 해외 기관이 한국 주식 비중을 크게 높였던 시기다. 이들 국내외 기관을 상대로 주문을 받아 실적을 높이기 위해선 애널리스트가 많이 필요했다. 증권사별로 영입 경쟁이 벌어진 것도 이때다.

당장 쓸 수 있는 인재풀이 한정되다 보니 삼성과 현대자동차 등 산업계와 회계법인 등에서 애널리스트를 수혈하기도 했다. 외국계 증권사 출신도 상당수 데려왔다. 미래에셋증권은 리서치센터 헤드를 아예 홍콩으로 옮겼다. 이 과정에서 몸값이 부풀어 올라 스타 애널리스트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였다. 일부 외국인 애널리스트는 연봉 10억원 이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펀드에서 돈이 꾸준히 빠져나가고 운용사 규모가 쪼그라들자 잔뜩 늘려놓은 리서치센터 조직이 부담스런 존재가 됐다.

재계약을 안 해 주거나 계약기간이 남았어도 애널리스트가 스스로 떠나는 일이 많아진 이유다. 외국인의 한국 주식 매도세가 올 들어 계속되자 외국계 출신의 고연봉 애널리스트가 우선 정리대상이 됐다.

주식시장이 좋아져도 애널리스트의 입지가 예전만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 전직 리서치센터장은 “법인영업과 리서치는 매매를 자주해 수수료가 많이 나오는 운용사 비중이 클수록 좋은데 펀드 시장 위축으로 운용사는 계속 쪼그라들고 있다”며 “그 빈자리를 매매 빈도가 적은 연기금과 보험 등이 메우고 있어 구조적으로 애널리스트가 설 땅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