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첫 해외 순방지로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를 선택한 것에는 미국과 일본의 대중 포위망을 뚫고 외교 활로를 모색해보겠다는 정치적 함의가 담겨있다.

시 주석의 첫 순방 동선과 최근 연임에 성공하거나 다시 권좌를 되찾은 미·일 정상의 첫 해외 순방 동선을 비교해보면 이런 외교 지형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작년 11월 재선 후 첫 외국 방문지로 중국과 우의가 두터운 미얀마,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를 택하면서 아시아로 돌아오겠다는 미국의 전략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중국 정부는 이런 움직임을 두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건설적 역할을 환영한다"고 말했지만 속내는 그리 편하지 않다.

중국 내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노골적인 중국 포위·견제 전략을 노골화한 것이라는 불만 여론이 들끓었다.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영유권 분쟁으로 극한 대립을 하는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한 술 더 떠 노골적으로 중국 포위망 구축에 시동을 걸었다.

아베 총리는 1월 취임 후 남중국해 도서 영유권 분쟁으로 중국과 긴장 관계에 있는 베트남을 포함, 동남아 3국 순방에 나섰다.

비슷한 영토 문제를 안은 중국 주변국과 연대해 군사력을 키우면서 활발한 해양 진출에 나선 중국을 견제하려 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여기에 더해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가치관을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가치관 외교'를 강조하면서 인도, 호주, 미국 하와이를 축으로 한 '다이아몬드 안보 구상'도 내세웠다.

이런 최근의 동아시아 지형 속에서 시 총서기는 첫 순방지로 러시아와 아프리카를 택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모습이다.

진찬룽(金燦榮)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중국 국가주석의 첫 국외 방문은 외교 정책의 우선 방향을 드러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이타르타스통신과 인터뷰에서 "현재 러·중 관계는 수세기에 걸친 양국 역사에서 가장 좋은 시기를 누리고 있다"고 강조할 만큼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최고 수준의 밀월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평가다.

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에 맞서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를 함께 주도하는 것을 포함해 북한 핵, 이란 핵, 시리아·팔레스타인 문제를 비롯한 중동 문제 등 국제·지역 문제에서 강력한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과거 양국 간 협력이 정치·외교 사안을 중심으로 했다면 최근에는 양국 간 경제 협력의 고리도 더욱 강해지고 있다.

2012년 중·러 무역액은 881억6천 달러로 아직 중·미, 중·유럽, 중·일 무역액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2005년에 비하면 이 수치는 2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양국 간 경제·무역 협력 규모의 증가 속도는 매우 빠르다.

또한 주 수출 품목인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출선 다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러시아와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에 맞서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해야 하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 밖에도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비롯한 극동 지역의 경제 발전에, 중국은 동부 연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동북3성 지역 진흥에 나섰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펑위쥔(馮玉軍)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러시아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양국의 지역 개발 협력은 경제무역 합작의 중요 영역이 될 것"이라며 "중국은 투자 방식으로 러시아 극동 지역 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베이징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cha@yna.co.kr